아이패드 `편법 수입` 기승

개인 반입 형식으로 대량 반입

 방송통신위원회가 아이패드 개인 1대 구매를 허용키로 방침을 정하면서 그동안 전면 중단됐던 아이패드 구매대행 서비스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 대형유통업체들이 조직적으로 개입, 마치 개인이 반입하는 것처럼 위장해 제품을 대량 수입 판매하는 편법도 늘고 있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자파적합인증 문제로 아이패드의 국내 반입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난달 13일께부터 전면 중단된 아이패드 구매대행 서비스들이 최근 방통위의 개인구매 허용 방침이 발표된 이후 ‘미국 현지 발송’ 형태로 재개되고 있다.

 옥션·11번가 등에서 주문을 받아 미국 현지에서 대량으로 구매해 국내에 들여왔던 사례는 물론 특정 유통업체 중심으로 복수의 개인 인적사항을 모아 개인이 반입하는 것처럼 신고한 뒤 물건을 판매하는 방식도 늘고 있다. 이들은 방통위가 허용키로 한 우편물 배송 형태를 취하고 있어 반입에 별다른 제재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방통위가 허용한 ‘개인 1대 반입’ 규정이 사실상 무너진 것은 물론 유통업체의 대량 편법 반입이 허용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이 같은 판매를 목적으로하는 대량 반입은 이전과 동일하게 세관에서 차단된다고 밝히고 있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며 구매 이전에 확실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애매모호한 입장도 전달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사용자에게 위해가 될 수 있는 제품까지 마구잡이로 들여올 수 있는 뒷문을 열어준 꼴”이라며 “무분별한 정부의 허용으로 사용자 피해는 물론 IT 기업들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kr

 <뉴스의 눈>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4월 27일 긴급브리핑을 통해 ‘와이파이 등이 탑재된 개인 반입 기기 통관을 쉽게 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이후, 그동안 중단됐던 아이패드의 구매대행서비스가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결국, 정부가 대량 판매 목적을 가진 사업자에게 전파 인증을 안받고 우회적으로 국내에 들여오는 편법을 허용해 주는 결과가 된 셈이다.

 유통 관련 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번 개인 인증 대체 허용을 악용한 편법 유통이, 국내 정상적인 IT 제품 유통 구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대형 자본력을 갖춘 유통상이 직접 구매자가 아닌 가상의 인물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개인 구매를 가장해 미국 현지에서 대량으로 아이패드를 구매해 우편 배송으로 들여오는 편법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태는 아이패드를 필두로 국내에 미출시된 블루투스, 무선랜 기능을 갖춘 해외 IT 제품들이 인증 절차를 밟지 않고 무분별하게 국내에 유입될 수 있는 통로를 정부가 스스로 마련해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의 ‘인증주권 포기’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정보통신업계와 학계는 “정부가 국가 예산으로 제품을 구입해 꽁짜로 시험을 해준 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면 ‘인증을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정부 방침은 법적 근거는 물론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조치”라며 “향후 국가 인증업무 수행의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개인 반입에 한정한다고 할지라도 이 조치가 실제 이뤄져 선례를 남기면, 앞으로 방송통신위원회는 도입 요구가 있는 정보통신기기라면 뭐든지 구입해 시험 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는 것이다. 아이패드 뿐 아니라 모든 정보통신기기를 방통위 스스로 구입해 시험하고 문제가 없다면 해당 기기가 인증을 받은 것으로 간주해 줘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개인 사용이나 연구 목적으로 들여 온 소량의 물품은 큰 문제 없이 통관돼 왔고, 문제가 발생하면 사후 조치를 취하는 수준에서 진행됐다”며 “방통위 스스로 인증을 대신해 주겠다는 것은 인증제도 자체를 흔드는 어처구니 없는 행정조치”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방통위가 인증한 것으로 간주한 제품의 변종에 대한 처리 문제다. 방통위 스스로 인증한 제품이 유통과정에서 일부 버전이 바뀌고 주파수 등이 변조된 제품이 나올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 통상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해당 제조업체나 수입업체가 규명의 주체가 되는데, 이번 경우는 규제기관인 방통위가 뒤집어 써야 한다.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미국 ‘FCC-740 Form’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FCC-740 Form’은 제품 내용과 사용 용도를 간단히 명시한 수입신고서 양식의 하나다. 문제가 생길 경우 통관한 자(반입자)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 성격이 짙다. 언제든지 FCC가 요구하면 어떤 조치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방통위는 더 늦기전에 해외 사례를 분석해, 정부 권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얼리 어댑터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업계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