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차세대 위치 추적 기술

[이머징 이슈]차세대 위치 추적 기술

 -아름답지 않소?

 -아름답지만 비윤리적이고 위험하군요. 고담시내의 모든 휴대폰을 마이크로폰으로 만들었습니다.

 -고주파 발생기이자 수신기이기도 하죠.

 -제 소나(Sonar) 아이디어를 도시 내의 모든 전화에 적용한 거군요. 도시의 반에 소나 장비를 풀면 고담시 전체를 이미지화할 수 있어요. 이건 잘못됐습니다.

 -그 놈을 찾아야 해요, 루시우스.

 -이렇게까지 해서요?

 -데이터베이스는 부재 암호로 되어 있고 오직 한 사람만 접근할 수 있소.

 -한 사람이 갖기엔 너무 큰 힘이에요.

 -그래서 맡기는 거예요. 당신만이 쓸 수 있소.

 -3000만 시민을 감청하는 건 내 직무엔 없습니다.

 -이건 음성 샘플이오. 놈이 도시 내 핸드폰 통화 범위에서 말을 하면 놈의 위치를 삼각 측정할 수 있소.

 -이번 한 번만 도와 드리죠. 대신 사표 쓰는 걸로 알고 계십시오. 이 기계가 웨인 엔터프라이즈에 있는 한 전 여기에 없습니다.

 

 2008년작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고담시내 모든 휴대폰을 해킹한다. 음파로 지형물을 파악하는 소나(Sonar) 기술을 휴대폰에 응용, 시민을 인질로 잡고 있는 조커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배트맨의 조력자이자 회사 경영을 맡고 있는 루시우스는 이런 추적 방식은 잘못된 것이라며 조커를 찾은 뒤엔 장비를 파괴하겠다고 했다.

 기술적 가능 여부를 떠나 영화 속 휴대폰을 이용한 위치추적은 그럴듯하게 그려진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개개인의 모습이 드러나고 책상이나 건물, 심지어는 각 층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실제로 있다면 끔찍한 일이다. 나의 대화 내용을 듣는 것도 모자라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으니 그야말로 ‘사생활’은 단어로만 남을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 최근의 기술 발전은 이런 우려를 쉽게 떨칠 수 없게 한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알 수 있다

 현재 가장 보편적인 위치 정보 기술로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GPS가 있다.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GPS는 군사용으로 개발됐지만 폭넓은 쓰임새로 항공이나 선박, 자동차 등에 적용된 지 오래다. 기술 발전으로 그 적용 대상은 더욱 작고 세밀해져 최근엔 휴대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낯선 건물을 찾을 때, 친구들과 함께할 주변 맛집을 검색할 때, 혹은 경로 등을 알고자 할 때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GPS다.

 GPS가 뛰어난 기술이긴 하지만 위성신호를 받지 못하는 곳, 즉 실내에선 무용지물이 된다. 지하 3층인지 혹은 지하 1층인지 ‘높낮이’는 물론이고 1번 출구 쪽인지 아니면 주차장 쪽인지 GPS로는 실내에서 방향도 파악할 수 없다.

 이런 GPS의 한계를 극복한 기술이 조만간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이른바 ‘실내외 연속측위 기술’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주도하고 SK텔레콤, KT, 서울대, 셀리지온, 디지털오션 등이 참여, 4년에 걸친 공동연구 끝에 탄생한 실내외 연속측위 기술은 GPS를 쓸 수 없는 곳에서 무선랜(와이파이)을 활용한다. 사무실, 카페, 심지어 지하철까지 최근 광범위하게 배치되고 있는 와이파이 AP를 거점 삼아 △휴대폰에서 측정된 와이파이의 신호세기 정보 △와이파이 AP의 데이터베이스 정보 등을 조합해 스마트폰 사용자의 위치를 찾는 방식이다.

 이 실내외 연속측위 기술은 오차범위가 5m 내외로 상당한 정확도를 자랑한다. 또 기존에 설치된 와이파이 AP를 이용해 위치를 결정하기 때문에 인프라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조만간 이를 실제로 확인해 볼 기회도 열린다. 롯데백화점은 KT와 협력해 오는 2월 소공동에 위치한 본점과 애비뉴엘(명품관), 영플라자에서 시범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으로 현재 한창 준비 중이다.

 

 ◇당신의 위치를 알아도 되겠습니까.

 실내 위치 추적은 여러 측면에서 유용할 것이다. 간단한 몇 가지만 상상해 보면 복잡한 대형 지하상가에서 한눈을 팔던 어린이를 눈 깜짝할 사이 잃어버릴 때 스마트폰으로 아이의 위치정보를 확인해 바로 찾는 일이 가능해진다.

 또 재난 발생 시 재난지점 파악, 응급 환자 발생 등 긴급 상황 시 이용자를 찾거나 피난 위치 제공, 출구 등 해당 위치를 찾는 데 소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상점들이 가득한 지하 쇼핑몰에서 내가 원하는 곳의 매장 위치를 정확히 찾을 수 있어 경제적 효과 역시 기대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에 위치정보에 기반을 둔 서비스가 세계 각광을 받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세계 위치정보 시장 규모가 2007년 5억달러에서 2012년에는 18배인 90억달러로 급성장을 예상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작년 6월 위치정보산업 활성화 계획을 확정하고 각종 규제를 정비하는 등 모바일 시대의 성장산업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제 개인의 위치정보는 노출이 더욱 쉬워졌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휴대폰을 매개로 실외에선 GPS 추적이, 실내에선 와이파이 추적이 가능해 극단적인 표현으로 어디에 있든 ‘발각’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영화 ‘다크 나이트’의 그럴듯한 장면이 상상 속 이야기만이 아닌 셈이다.

 롯데백화점과 협력 중인 KT는 앞으로 대형 백화점뿐만 아니라 복합쇼핑몰, 전시장, 박물관, 관공서 등에도 실내 위치정보 서비스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4만2000곳이 넘는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 확산을 자신한다. 롯데백화점 외에도 현대백화점 역시 유사한 서비스를 준비 중이어서 이제 위치기반 서비스는 실내외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다양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개인정보보호다. 시민단체들은 GPS도 사생활 침해 우려를 제기하며 휴대폰 탑재 의무화를 반대한 바 있다. 특히 수사기관의 위치정보 오남용 문제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빅 브러더’의 탄생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치추적은 더 세밀해지고 과거보다 정확해졌다. 앞으로 더 큰 논란을 불러올 소지가 그만큼 커지고 있다. 나의 현재 위치가 더 자세히 드러나기 때문에 범죄와 스토킹의 위험은 더욱 늘어났다.

 산업 발전과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이 앞으로 더욱 잦아질 것이 분명한데 무엇보다 개인 정보 소유자, 즉 본인 자신이 위치 정보와 같은 개인 정보를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보장이 최우선해야 할 것이다. 관련 업체들은 이에 발맞춰 조항과 약관을 단순화해 사용자가 서비스 이용에 따른 위험도를 더 알기 쉽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