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차세대 시스템 오픈 줄줄이 연기…왜?

최근 3년간 차세대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수행한 증권사들은 예외 없이 신시스템을 늑장 개통했다. 2008년부터 따지면 지난 22일 시스템을 개통한 NH투자증권까지 모두 10개사가 한 차례에서 많게는 세 차례까지 시스템 개통일을 늦췄다.

일부 증권사는 비슷한 시기에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한국거래소(KRX)의 신시스템 개통 일정이 늦춰지면서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무려 3년간 특정 업종의 차세대시스템 구축 일정이 예외 없이 지연된 것은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해본 경험이 부족한데다 철저한 준비 없이 경쟁적으로 사업에 뛰어든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시스템 개통목표일 기준으로 2008년부터 지금까지 차세대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증권사 및 기관 10개사 중 한 차례 이상 개통일정을 연기한 곳이 6군데, 두 차례 이상 미룬 곳이 네 군데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지난 9월 추석연휴에 차세대시스템을 개통할 예정이었던 동양종합금융증권까지 포함한 수치다.

이처럼 증권업계가 차세대시스템 개통일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우선 프로젝트 요구사항을 철저하게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박철민 코스콤 시장본부장은 “증권 업계 대부분이 원장 이관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업무 요건을 상세히 분석해본 경험이 많지 않았다”면서 “프로젝트 도중 추가 개발 요구 등으로 인해 시스템 개발 기간이 예상보다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법 등 법·제도의 변화도 한몫을 했다. 차세대시스템 구축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새로운 법·제도가 시행되면서 더 애를 먹게 된 것이다. 국제회계기준(IFRS), 자금세탁방지(AML) 등과 같은 컴플라이언스 이슈가 비슷한 시기에 대두되면서 시스템 변경 작업이 가중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증권사 스스로 철저하게 프로젝트 일정을 관리하지 못한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대부분의 증권사가 프로젝트관리조직(PMO)을 별도로 두는 등 프로젝트 관리에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단계별로 프로젝트 진척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의 한 CIO는 “PMO 조직을 활용하면 프로젝트를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품질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기대와는 달랐다”면서 “증권업계의 경험도 부족했고 PMO의 역할이 단순 관리 수준에 그치는 등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비슷한 시기에 대규모 프로젝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증권IT 전문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잇따른 프로젝트 지연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호재 투이컨설팅 상무는 “증권업계가 원장 이관 이후 지난 10여년간 비즈니스와 직접 연계된 대규모 정보시스템을 구축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면서 “일정이 늦춰질 경우 더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차세대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최근 동부증권·교보증권 등 중소 증권사들이 차세대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한국예탁결제원과 한국투자증권은 내년 초와 내년 하반기에 각각 시스템을 개통할 예정이다. 증권업계의 차세대 ‘악연’이 올해로 끝을 맺을지 주목된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