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호민관(護民官)

로마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도가 호민관(護民官)제도다. 로마는 공화정 초기인 BC 494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호민관은 평민으로 이뤄진 민회에서 선출했으며 민회 의장으로 민회를 소집하고 주재했다. 호민관은 민회에서 독점적으로 법률을 발의할 수 있는 권리와 때에 따라 원로원을 소집하고 청원할 권리가 있었다. 또 집정관 및 정무관의 결정이나 다른 동료 호민관의 결정이 평민의 권익에 배치될 때에는 거부권을 행사해 무효화하거나 중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호민관의 중요한 역할은 평민의 요구를 대변하고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이었다. 집정관이나 정무관의 전횡을 막아달라고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든 평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평민이 언제든 찾아와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호민관은 밤낮 자기 집 문을 열어 놓아야 했고 도시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했다.

호민관은 위협을 받지 않고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의 신체는 신성불가침으로 선포됐다.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의무 수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로마는 호민관을 매년 선출해 평민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계급 간 갈등을 봉합할 수 있었다. 로마가 국가 운영의 묘를 살리면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호민관이 평민과 귀족의 완충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중소기업 옴부즈맨 제도 사례를 참조해 중소기업의 만성적 규제애로 해소와 권익 대변을 위해 기업호민관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 규제의 70%에 달하는 중소기업규제를 기업시각에서 체계적으로 정비해 규제개선에 대한 현장의 체감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당초 의지가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주 이민화 초대 기업호민관이 사퇴의사를 밝힘에 따라 의미가 퇴색된 것이다. 이 호민관은 사퇴이유가 정부부처의 개입으로 기업호민관의 독립성이 훼손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원인이 무엇이든 이번 사태는 그동안 기업호민관제도가 부처 이기주의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해서 씁쓸하다. 대기업의 틈바구니 속에서 터져 나오는 중소기업의 한숨소리는 아직도 정부부처에 전해지기 어려운 모양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