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소셜미디어

`사회변혁 첨병인가, 오합지졸 네트워크인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대변되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놓고 네티즌의 설전이 뜨겁다. `아웃라이더` `티핑포인트` 등 베스트셀러 작가 맬컴 글래드웰이 최근 시사잡지 `뉴요커`에 기고한 글이 불을 지폈다.

글래드웰은 “소셜미디어의 등장이 사회변혁이나 혁명을 촉진할 것이라는 믿음은 과장됐다”며 “트위터를 통한 사회참여는 큰 위험을 질 필요가 없는 조건에서만 부담없이 참여하는 결속력”이라고 폄하했다. 페이스북 내 봉사 사이트 기부액이 현격히 낮은 사례를 근거로 제시했다.

네티즌은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다. 소수 사례를 일반화한 것이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논란이지만 우리 언론학계도 충분히 연구과제로 삼아볼 만한 주제다. 국내에도 하루가 다르게 `트윗`이나 `페북` 폐인이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미디어`라는 용어를 가장 처음 사용한 사람은 캐나다 언론학자 마셜 매클루언(1911~1980)이다. 그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인식하고 사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미디어는 우리의 신체나 감각기관을 대신해 세계를 인식, 세계관을 형성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미디어가 메시지까지 결정한다고 본 매클루언이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분명 글래드웰의 소셜미디어 폄하 발언에 강력 반발하지 않았을까.

역사학자들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도 마침 등장한 활자 인쇄술이 없었다면 실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로마 가톨릭의 부패를 조목조목 따진 95개조의 반박문은 인쇄술이 만들어낸 `책`이라는 대중 미디어를 통해 유럽 각국에 전파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젊은층의 높아진 투표율에서 소셜미디어의 위력이 잠깐 나타났다. 하지만 글래드웰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인터넷으로 조직됐던 `광우병 촛불`처럼 온라인상의 느슨한 연대는 결정적인 순간에 거품이 빠질 수 있다. 다만 눈여겨볼 사실은 정치인, 연예인, 기업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신문 · 방송 등 올드 미디어까지 소셜미디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장지영 컨버전스팀장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