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위 아직 갈길 멀다

<ET칼럼>국과위 아직 갈길 멀다

뜻밖이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예고편이 방영됐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소속 상설 행정위원회로 예산권을 가진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신설은 의외였다. 기획재정부가 완강히 거부해 온 연구개발(R&D) 예산의 배분 · 조정 · 평가 기능을 가져온 것은 기대 이상이다.

행정 절차와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내년 2월께 국과위가 출범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현 정부 들어 해체된 정보통신부 · 과학기술부가 시차를 두고 상설 행정위원회로 옷을 바꿔 입고 등장한 셈이 됐다. 그동안 IT특보가 신설된데 이어 새롭게 대통령이 위원장인 국과위까지 등장하게 됐다. 사실상 MB정부의 IT, 과학기술 정책의 궤도 수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비롯, 몇몇 여당 중진 의원들까지 이미 정통 · 과기부 해체의 잘못을 인정한 상황에서 버텨 오던 터라서 더욱 그렇다.

물론 관료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정통 · 과기부의 부활은 분명 아니다. 위원회 조직인데다 정책 관할권을 두고 다투는 상황이 재연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방통위 · 지경부 · 행안부는 IT정책의 관할권을 다투는 상황이다. 국과위 신설은 과기부 통폐합의 실패를 스스로 시인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국과위 출범의 의미에 다름 아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이다. 이 기회에 국가 R&D 거버넌스 체계를 혁신하고 미래 먹을거리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그런 만큼 아직 갈 길이 멀다. 상부구조 개편에 이어 하부 출연연 재편도 필요한 상황이다. 당장 출연연의 통할권 조정과 구조조정 문제가 걸려 있다. 출연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무늬만 국가위가 된다. 국과위 신설은 과기 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정책수립 · 기획 · 조정 기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 처방일 뿐이다.

합의제 위원회의 출범은 최선이 아니라는 얘기다. 더구나 정통부와 과기부는 기술 변화 주기가 빠른 미래형 산업부처다. 속도감 있는 정책결정과 추진력이 동시에 필요한 독임제 행정부처가 적격이라는 의미다.

이미 우리는 합의제 방통위의 한계를 목도하고 있다. 시급한 일반 행정 안건까지 합의제에 걸려 시간을 허비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시 보자는 것이다. 오히려 이제 막 도입하기로 한 위원회 조직을 추스르면서 정부 부처와 출연연 개편에 대한 논의의 시발점으로 삼자는 것이다.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정책 쟁점화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서두를 게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서두를수록 정치적인 이해가 끼어들 소지가 있고 부처 간 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릴 수 있다. 독일 · 프랑스 · 일본 등의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R&D 거버넌스 체계를 연구하고 보다 치밀하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이제는 또 다른 시작이다. 국과위는 물론이고 방통위 · 교과부를 포함해 미래 부처의 거버넌스 체계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당장 출범한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승정 미래기술연구센터장 · 부국장 sj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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