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실리콘밸리 성공에는 `V · E · N · T · U · R · E`가 있다

미국 경기 재침체(더블딥) 논란이 끊이지 않는 2010년 초가을.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있는 실리콘밸리를 찾은 기자는 이곳에서 여전히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벤처기업, 이들과 함께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투자자 그리고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경기 침체 논란과는 별개로 열정으로 넘쳐났다.

1950년대 시작된 실리콘밸리 개발. 그리고 오랫동안 이곳은 흔들림 없이 성공벤처의 발원지 역할을 해왔다. 많은 사람이 대박 꿈을 이뤄냈고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인재가 글로벌 스타를 꿈꾸며 실리콘밸리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확신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지금보다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였다. 그런 실리콘밸리의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V · E · N · T · U · R · E` 분위기를 7개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Vitality=생명력이 넘쳐 나는 곳

실리콘밸리에서는 끊임없이 벤처가 탄생했다가 때론 시끄럽게(대기업의 피인수) 또는 조용히(폐업) 사라진다.

특히 창업 과정에서는 애플처럼 침실과 차고에서 지인도 모르게 조용히 창업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래서 작년 말 기준 실리콘밸리 벤처기업 수가 2만3883개로 집계됐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중요한 것은 벤처 탄생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

그렇다면 왜 실리콘밸리에선 창업이 활기를 띨까. 역시 주변에 성공사례가 많은 점을 꼽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다 보면 `대박`을 터뜨리는 기업들을 셀 수 없이 본다. 그곳을 보다 보니 창업에 대한 욕심이 절로 난다. 조성문 오라클 시니어매니저는 “이곳에서 수십억, 수백억원에 팔리는 회사가 하루에 하나씩은 나올 정도”라며 “아마도 이런 현상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자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듯 이곳에서도 하루 사이에 돈방석에 앉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이 창업을 통한 성공의 꿈을 꾸는 것이다.



#.Environment=완벽한 주변 여건

“아이디어, 사람(기업) 그리고 자금.”

실리콘밸리 소재 벤처기업인 카네스타의 짐 스페어 CEO가 꼽는 벤처가 성공하기 위한 요인들이다. 실리콘밸리는 이에 정확히 충족한다.

실리콘밸리에는 자고 나면 새로운 아이디어 기술이 등장한다. 스페어 CEO는 “온화한 실리콘밸리의 날씨와 전 세계 우수 인재가 이곳에 몰려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 벤처 성공 역사를 함께 쓰고 있는 스탠퍼드대학(1만4000명)과 버클리대학(3만명)에서는 매년 4만명 이상의 우수 인력을 쏟아낸다. 이들은 미국을 포함해 각국에서 날고 기는 인재들이다. 그들이 졸업 또는 재학 중에 번쩍 튀는 아이디어를 들고 벤처사업가 또는 벤처기업 핵심개발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벤처캐피털도 실리콘밸리의 자랑거리다. 이들의 소득수준이 높아 실리콘밸리의 물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지만 이들이 있어서 실리콘밸리는 존재하고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로이터 톰슨,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등 현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 8대 벤처 투자사 가운데 5곳이 실리콘밸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올 2분기 미국 지역별 벤처투자에서 45%가 실리콘밸리에 쏠렸다.

여기에 IT와 유관산업이 이곳에 총 망라했다는 것도 장점이다. 정보 습득이 빠르고 또한 제때 판매 등 거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Not Alone=창업자의 동반자, 엔젤투자자

`신용보증기관 VS 엔젤투자자`

한국과 미국 초기 벤처기업의 든든한 서포터들이다. 두 곳 모두 벤처기업의 자금난을 해결해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신용보증기관은 기업 대표에게 보증에 따른 부담(연대보증)을 요구하는 반면에 미국 엔젤투자자는 투자와 함께 경영자문(멘토링)에 나선다.

실리콘밸리에서 엔젤투자자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상당수의 성공 벤처 CEO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벤처기업 종사자가 마치 주식투자를 하듯 엔젤투자자로 나선다. 이곳의 엔젤투자가 활기를 띠는 것은 벤처창업과 유사하다. 주변에 엔젤투자자로 나서 크게 재미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나도 한번 해보겠다`며 뛰어드는 것이다. 특히 IT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 신생 벤처가 빠르게 시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초대박을 터뜨린 벤처사업가들도 의례 엔젤투자자로 나선다. 헝그리정신을 발휘하기 어렵게 된 성공한 사업가들은 창업보다는 과감히 엔젤투자자로 그들이 갖고 있는 인맥(네트워크)을 소개하고 자신이 한때 CEO 또는 임원으로 경험하면서 느꼈던 노하우를 과감히 전수한다. 그들의 생생한 경험은 초보 벤처사업가에게 큰 힘이 된다.



#.Try again=실패가 존경받는 곳

“사업했다가 망하셨나요? 당신을 채용하겠습니다.”

이곳이 실리콘밸리다. 우리나라에서의 사업 실패는 곧 `절망` `패배` `수치`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훌륭한 경험(스펙)`이다. 그래서 이곳의 내로라하는 IT대기업과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벤처캐피털에서도 그 경험을 인정해 적극 채용에 나선다.

한국에서는 좀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런 현상에 대한 이유를 스티븐 곽 스틱인베스트먼트 현지 사장에게 들었다.

“실패했으니까 앞으로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이 아닙니다.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다음에는 더 깊게 생각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같은 난관에 닥쳤을 때 더 빠르게 극복할 수 있는 경영 노하우를 익혔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능력에 신뢰를 보내는 것입니다.”



#.Unique=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아이디어와 기술

올해 벤처기업협회 수장을 맡은 황철주 회장은 `명품벤처론`을 주창하고 있다. 내수시장이나 대기업 하도급을 고집하지 말고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그들만의 기술을 갖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곳도 한국의 삼성전자 · LG전자 · KT · SK텔레콤과 같은 구글 · 애플 · HP · 인텔 등의 IT 대기업이 수도 없이 많다. 특히 이들이 한 블록 건너, 때론 정원을 맞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곳 벤처들은 IT대기업들에 단순 하도급이 아니라 그들이 갖지 못한 첨단 아이디어 기술을 개발한다는 점이다. 대기업에 단순히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질 수 없는 기술로 그들을 압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IT벤처기업인은 대기업의 인수에 가격만 맞는다면 선뜻 매각하겠다는 의사다. 회사가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전 세계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브랜드 파워`가 필요한데 여기에 대기업과 손잡는 것은 가장 큰 해법이라는 판단이다.



#.Rotation=선순환 생태계

`창업→실패→재창업→성공→엔젤투자자 변신→새로운 벤처의 멘토`

선순환 벤처생태계의 전형이며 실리콘밸리의 모습이다. 정확히는 앞에서 밝힌 모든 것이 선순환 벤처생태계를 위한 요소들이다.

실리콘밸리는 이 같은 생태계 모습이 꾸준히 유지돼 돌아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경기를 크게 타지 않는다는 것. 경기가 좋을 때는 그렇기 때문에, 경기가 나빠지면 그것도 활력을 불어넣는 요인이 된다. 2008년 후반부터 이곳 IT대기업에서는 적잖은 엔지니어가 일자리를 잃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모든 기업이 축소경영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이들은 창업에 뛰어들었고 최근 이들 가운데 성공 벤처사업가가 여럿 탄생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에서 우수인재들이 나와 창업에 뛰어든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자신이 힘들 때 엔젤투자자의 도움을 받았던 현재의 엔젤투자자들은 이들에게 과감히 투자에 나섰고 그 결과 지금 빛을 보고 있는 업체가 나타나는 것이다.



#.Enjoy=일을 즐기는 사람들

사람은 자신의 목표를 실현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그 목표 달성에 물질적 보상이 뒤따른다면 쾌감은 더욱 크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이 같은 물질적 보상을 기반으로 한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주변에서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 많고,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직접 창업하거나 또는 엔젤투자자로 나선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큰 성공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사람관리를 하는 것도 요인이다. 이곳에서는 인력 이동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직원이 직접 창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 좋은 조건을 누리기 위해 경쟁사 또는 신생기업으로 이직한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이곳 IT대기업에 이직한 한 한국인은 “한국에서는 뭔가 악착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지만 이곳에서는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돈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밤늦게까지 일하지 않고 상사 눈치 안 보면서 내 능력을 발휘하면 그것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실리콘밸리다. 이런 요인이 사람들에게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실리콘밸리(미국)=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