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적인 정부의 통신요금 정책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와 가족 간 유무선 결합할인을 뼈대로 추진했던 SK텔레콤 요금인하 계획이 결국 부분 시행에 그치게 됐다. 가족 간 유무선 결합할인 상품이 방통위의 인가를 받지 못한 것이 배경이다. 통신사업자 스스로 내놓은 요금할인 방안이 경쟁업계의 이해 관계와 유무선으로 나뉜 마케팅 규제로 인해 시행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업계 자율의 요금 인하 개선방안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하반기 들어 전기요금과 가스비 등 주요 공공요금이 잇따라 오르면서 이의 만회책으로 가계통신요금 인하에 주목하고 있다. 통신요금 인하와 마케팅 효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노력은 무시되고, 정부가 정해 놓은 정책적 틀 안에서만 요금 인하를 주문하는 모습이다. 컨버전스에 따른 통신시장의 변화를 무시하고 오로지 통신요금 인하만을 강조하고 있다.

◇방송시장에 영향을 줘선 안 된다=SK텔레콤은 유선과 무선, IPTV까지를 망라하는 유무선 결합상품을 내놓으려고 했으나 결국 방통위의 인가를 받지 못했다. 소비자와의 약속도 어겼다. 특히 IPTV는 결합상품에서 제외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유는 다른 방송상품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원한 IPTV를 끼워 팔게 되면 방송산업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국회쪽 발언도 영향을 미쳤다.

◇물가안정 정책에 통신요금 인하는 단골 손님=최근 정부는 잇따라 민생안정 회의를 열어 물가 잡기에 나서고 있다. 오르는 물가를 잡겠다는 대책이지만, 그 초점은 가족통신요금 인하에 맞춰져 있다. 통신요금 외에는 인하를 기대할 만한 이렇다 할 공공요금이 없다는 점이 재정경제부 등 물가 당국의 고민이다.

통신사업자들은 지속적인 인하책 시행과 통신시장의 정체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한다.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정부의 잦은 인하 압박은 오히려 업계 반발을 불러 올 수 있다며 주춤한다.

◇통신요금 인하 새로운 시각에서 봐야=통신서비스 종류가 늘다 보니 통신비 부담의 증가는 불가피하다.

일례로 통신과 교육의 융합서비스인 인터넷 강의, 모바일 강의 등의 확산은 교육비와 교통비 절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절감되는 교육비와 교통비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통신비 증가만이 논의되는 게 물가 당국의 `셈법`이다.

방통위 고위관계자도 “기본적으로 가계부담을 줄이기 위한 통신비 인하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국내 통신소비자들이 받고 있는 서비스의 질과 양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하게 통신요금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통신서비스는 전반적인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하락하는 몇 안 되는 품목 가운데 하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 물가에서 거의 대부분의 상품(서비스) 가격은 오르고 있으나, 소비자가 실제로 지불하고 있는 통신서비스비(명목지출) 비중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이는 스마트폰 증가와 다양한 서비스로 인한 전체적인 통신비 부담 상승 요인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통신요금의 절대 수준은 낮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통신서비스의 물가지수 추이를 보면, 2005년 2분기를 100으로 했을 때 2007년 2분기는 98.8, 2009년 2분기는 97.6, 올해 2분기는 96.6으로 떨어졌다. 반면에 전체 물가는 2005년 2분기 99.8에서 올해 2분기에는 115.6으로 크게 높아졌다.

문제는 이 같은 수치가 일반 국민에게 와닿지 않는 데 있다. 대다수 국민에게 스마트폰 확산 등으로 인한 통신서비스의 양적 확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지속적인 통신비 인하에도 불구하고 매년 늘어나는 가계통신비 부담이 `체감지표`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요금인하와 달리,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에는 별도의 요금체계를 보다 공고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문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차상위 계층에는 더욱 파격적인 요금 할인이 있어야 한다”며 “다만 관련 업체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 정부가 일정 부분 지원을 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규호 · 류경동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