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네티즌이라 피곤해”

포털 가입ㆍ인터넷 결제 등 절차 복잡, 간편한 해외 사이트와 대비 `무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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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김철수 과장(가명)은 얼마 전 완성한 자사 상품 홍보 동영상을 한 포털 동영상 게시판에 올리려다가 짜증이 치밀었다. 해외 사이트인 ‘유튜브’에는 신속하게 올릴 수 있었는데 한국 포털 사이트는 실명 인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해당 사이트에 가입부터 해야했다. 주민등록번호를 넣자 이미 등록된 아이디(ID)라는 문구가 나왔다. 오래 전에 가입해둔 모양이다. ID와 비밀번호를 몰라 휴대폰 인증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김 과장은 겨우 동영상을 올릴 수 있었다. 부장은 김 과장이 게으르다며 화를 냈다.

점심시간, 미국에서 방문한 협력사 실무진과 비즈니스 미팅을 가졌다. 김 과장은 식탁 위에 올라 있는 상대방의 스마트폰을 보며 얼마 전 큰 맘 먹고 구입해 놓은 자신의 안드로이드폰도 슬그머니 꺼내 올려 놓았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흘러갔다.

김 과장은 추천받은 애플리케이션을 꼭 내려받겠다며 다음에 만날 때는 게임을 같이 해보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미팅을 마쳤다. 사무실로 돌아온 김 과장은 아까 전해들은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기 위해 안드로이드마켓에 들어갔다. 하지만 게임 카테고리가 차단돼 있어서 아예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난감해진 김 과장은 다음 미팅 때는 스마트폰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후 3시. 휴게실에서 아이폰을 샀다고 자랑 중인 부하직원을 발견했다. 아이폰도 한국 계정에서는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받을 수 없지만, 그 직원은 미국 계정은 물론이고 홍콩 계정까지 터놓고 모든 종류의 애플리케이션을 마음껏 받고 있다고 했다.

부하 직원이 몇 번 터치를 하자 화면 속 ‘구글 어스’가 푸른 인왕산 풍경을 보여줬다. 미국 계정으로만 가능한 구글 어스 대신 김 과장에게는 일전에 받아둔 국내 포털의 위성지도 애플리케이션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 있게 클릭해 찾아 들어간 김 과장의 인왕산은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다. ‘국가 안보’ 때문이었다. 김 과장은 알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퇴근 후 김 과장은 딸아이에게 사주기로 약속한 가방이 생각났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지만 아직 한국의 스마트폰은 결제가 불가능했다. 부랴부랴 집으로 뛰어들어가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한 뒤 가방을 찾아 결제 버튼을 눌렀다.

공인인증, 카드인증 등 고작 2만원짜리 가방을 결제하면서 김 과장은 3번의 인증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베이·아마존 등 외국 사이트에서는 클릭만 하면 결제할 수 있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김 과장은 공인인증 관련 뉴스 밑에 ‘악플’을 남긴 뒤 안방으로 돌아왔다.

한국 네티즌이기 때문에 겪은 고생 때문인지 모르는 채로 김 과장은 잠이 들었다.

정미나기자 min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