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디지털 시대의 무한 혁신과 `동사`적 사고

[ET단상]디지털 시대의 무한 혁신과 `동사`적 사고

 디지털 카메라의 역사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오래됐다. 1975년 스티븐 새슨 이스트먼 코닥 엔지니어는 CCD를 이용해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다. 이 새로운 방식의 카메라는 ‘전자스틸 카메라(electronic still camera)’ 또는 ‘무필름 카메라(filmless camera)’로 불리며 디지털 카메라 개발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코닥은 1978년 디지털 카메라로 특허를 받았지만 사내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디지털 카메라는 당시로선 너무나 혁신적인 기술이었고 사진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흑백 TV 화면을 이용해야 했기에 대중성은 떨어졌다. PC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찍은 사진 파일을 어디에 저장할지도 곤란했다. 디지털로 정보를 공유한다는 개념조차 없던 시기였기에 코닥의 디카 개발은 21세기의 기술을 실험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말았다.

 이렇게 초라하게 시작한 디지털 카메라는 오늘날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제품이 됐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은 전통적인 필름을 바탕으로 한 카메라 산업에 큰 충격을 주었다. 즉석카메라를 발명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폴라로이드는 디지털 카메라의 영향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정작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한 이스트먼 코닥 역시 소비자가 디지털 사진도 현상하기를 원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디지털 사진 현상 비즈니스 모델에 집중한 탓에 쓴 맛을 봐야 했다. 디지털 카메라는 단지 기존의 필름에서 실리콘으로 저장매체를 바꿨을 뿐만 아니라 카메라라는 제품과 그것을 사용하는 소비의 의미를 기본적으로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이는 디지털 카메라가 모바일 전화기, GPS, 무선랜, 그리고 인터넷 등과 같은 다른 디지털 기술과 결합, 변형을 거듭한 결과다. 다른 기술 혁신과 달리 디지털 기술의 변화는 마치 생체 바이러스가 다른 바이러스들과 결합하고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면서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하는 것과 유사하다. 또 처음 그 기술을 발명한 기업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사용의 의미를 바꿔 나가는 특징이 있다. 나는 이와 같은 디지털 기술의 혁신을 가리켜 ‘무한혁신(unbounded innovation)’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디지털 기술의 무한혁신은 새로운 기술과 제품 및 서비스 창출을 기업 생존의 근간으로 삼는 21세기 경쟁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던지고 있다. 디지털 무한혁신은 근본적으로 기존의 제품과 직업이 가지는 피상적 의미를 파괴하고 새 제품과 직업의 의미를 끊임없이 창조해 나가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카메라’가 더는 카메라가 아니다. 또 ‘전화’가 전화가 아닌 것이 바로 무한경쟁의 핵심이다.

 이런 무한혁신에 가장 큰 걸림돌은 제품을 하나의 명사로 보는 사고다. 우리는 전화, 카메라, TV, 책, 자동차와 같은 명사와 기능을 결합시키는 기존의 사고방식을 벗어던져야 한다. 기존 제품의 범주를 무시하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결합하는 디지털 기술과 함께 무한혁신을 추구하려면 기업들은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기존의 명사적 사고를 벗어나서 동사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제품의 근본적인 의미를 추구하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 어떻게 다른 기능을 조합해야 할까’와 같은 능동적 생각을 가능케 하려면 ‘저것은 무엇이다’가 아니라 ‘저것은 무엇을 한다’는 동사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유영진 미국 템플대 경영대학원 교수 yxy23y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