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미래부를 기다리며

[ET칼럼] 미래부를 기다리며

 놀랄 필요 없다. 아이폰은 별게 아니다. 그 정도라면 중국의 왠만한 휴대폰 제조회사도 만들 수 있다. 애플 관계자나 아이폰 사용자들이 들으면 ‘아이폰을 뭘로 아냐’고 화낼만도 하지만 ‘아이폰’은 MP3플레이어 업체였던 애플이 만든 휴대전화에 불과하다. 그저 우리나라와 중국, 대만의 부품들을 다양하게 조합해서 만든 단말기일 뿐이다. 메모리칩에서부터 LCD까지 세계 시장 종주국인 대한민국에게 단말기로서의 아이폰은 그저 하나의 히트상품일 뿐이다.

 아이폰보다는 ‘아이폰 현상’에 주목한다. 애플의 아이폰을 이길 대항마는 우리 기업이라면 금방 만들겠지만, 이미 그보다 뛰어난 휴대폰도 나와있지만, ‘아이폰 현상’은 두고두고 새겨볼만한 일이다. 사용자 스스로 휴대폰을 만들어간다는 발상, 휴대폰 프로그램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다는 발상은 다윈의 진화론 만큼이나 충격적이다.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얄미울 정도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성과에 감동하던 대한민국을 지난해 11월부터 공포에 몰아간 ‘아이폰 현상’의 근원이다.

 아이폰 현상 뒤엔 스티브 잡스보다 더 큰 스타가 있다. 개방과 혁신에 기반한 미국의 통신규제정책과 그것을 만든 공무원, 의원들이다. 특히 미국의 개방적 데이터 통신요금제는 ‘아이폰 혁명’의 도화선이었다. 정액요금으로 무선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미국의 진화된 통신요금체계가 ‘초짜’ 애플을 순식간에 휴대전화, 통신서비스업체, 콘텐츠 제공업체, 모바일 포털업체로 격상시켰다. 패킷용량에 따라 요금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빠져 몇시간 놀던 어린이들에게 다음달 수십만원의 ‘살인’ 요금청구서를 보내는 정책이 아니라, 산업을 진흥하고 기업을 키우는 선진적인 요금체계였다.

 사실 우리나라 통신요금 정책도 이랬다. 인터넷을 정액제로 만들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고, 가능성을 의심하던 ADSL 모뎀을 확산시키기 위해 임대제를 기획해냈다. 이용요금을 낮춰 소비자가 자유롭게 인터넷을 활용하도록 만든 공무원의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정보통신 강국 대한민국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미국과 일본이 고지식한 패킷요금제, 거북이 통신망을 보유하고 있을 때 정보화고속도로를 과감하게 만들었다. 이를 추진할 머리좋은 공무원들로 세계 유례가 없는 ‘정보통신부’라는 단독부처를 만들었다. 그게 성공의 비결이었다.

 우리의 발전 방안을 미국이 벤치마킹했다. 벤치마킹은 절묘했다. 애플의 노력도 가상하지만, 뒷에서 이런 애플의 실험을 용납하고 미리 시나리오를 짜고 준비한 공무원들이 칭찬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휴대폰을 통화하고, 사진 찍고, 문자질이나 하는 도구로 알았던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 애플의 배후조종자는 공무원이었다. 정통부를 해체하고 방통위와 지경부, 문화부, 행안부가 규제와 진흥 정책을 놓고 핑퐁게임 할 때 미국은 2년만에 통신시장 맹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백악관 내에 미래 기술과 산업을 예측하는 상근 조직 CTO를 만들었다. FCC라는 위원회 조직만으론 규제와 진흥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IT를 진흥하고 규제하겠다는 목소리는 많다. 하지만 정작 규제와 진흥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없다. 새해 ‘미래부’를 희망하는 이유다. 미래 전략을 수립하고, 그에 대비해 미리 판을 정리하는 공무원을 만나고 싶다.

김상용 정보통신담당 부장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