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풍성한 국가 R&D 결실을 위해

[ET단상] 풍성한 국가 R&D 결실을 위해

 이달 초 과학자로서 매우 뿌듯한 현장에 다녀왔다. 3만여개에 달하는 지난해 전체 국가 연구개발(R&D) 과제 중 100개의 우수성과를 선정, 시상하는 자리였다. 풍성한 결실을 수확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연구자들에게 성과패를 전달하면서 그들의 노고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34조4981억원에 이르는 R&D비를 들였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3.37%에 해당되며 스웨덴, 핀란드,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수준이다. 절대액수로 따져도 세계 7위에 달한다. 현재 정부는 2012년까지 R&D비를 GDP 대비 5% 수준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내년도 정부 R&D 투자 규모 역시 올해 대비 10% 이상 확대될 예정이다.

 이처럼 규모는 계획대로 늘려가고 있으니 방향을 잡고 효율성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이자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투자 대비 무엇인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의 심리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R&D를 두고 리스크&데인저(Risk & Danger)라는 농을 할 정도로 R&D 결과를, 그것도 우수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연구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장 괴로운 사람은 바로 연구자 자신이다. 그런 연구자에게 R&D 성과, 효율성 등 너무 경제적인 잣대만을 들이대는 것은 자제했으면 한다.

 오늘날 국가경쟁력의 가장 큰 원천은 ‘창조적인 시각과 원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자산을 창출하고 활용하며 확산하는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미래 국가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 이제는 과학기술이 더욱 주도적으로 앞서 나가야 한다. 특히 기존에는 경제발전 측면에서 과학기술의 활용이 강조됐다면, 이제는 경제·정치·문화 등 사회전반에 걸쳐 다채로운 발전의 기폭제로서 과학기술이 자리매김해야 할 때다.

 이번에 선정된 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의 면면을 살펴봐도 여러 분야에 걸쳐 발휘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항암 면역치료능력 개선과 부작용 완화를 도모할 수 있는 새로운 항암치료법, 가정이나 공장에서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을 석탄 대체연료로 사용하는 기술, 많은 부품을 일본에 의지하고 있는 PDP 산업 국산화에 기여하는 초대형 고해상도 차세대 PDP 모듈 생산기술 등 우리 삶 곳곳에 기여할 수 있는 결실들이다.

 이제는 이런 대단한 R&D 수확물을 널리 대중에게 확산시켜 연구진에게는 자부심을, 대중에게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깨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산학협력의 자리를 찾아다니며 이러한 우수성과의 기술이전을 촉진하고, 우리 과학자들이 어렵게 일궈낸 자랑스러운 연구성과를 대중에게 더욱 쉽게 소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인 장석주는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고 했다. 천둥과 태풍 번개가 몇 개씩이나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이란다. 연구자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국가 R&D의 우수성과들은 바로 이러한 고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소중한 대추들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또 연구과정에서 몇 번의 벼락과 몇 번의 천둥을 만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들이 고된 과정을 헤쳐나가는 동안, 정책 입안자나 주변의 행정인력 그리고 우리 모두는 조용한 조력자가 되어 그들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자율적이고 안정적인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이준승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jslee@kis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