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금융 피해자 `바람막이 단체` 필요하다

[ET단상] 금융 피해자 `바람막이 단체` 필요하다

얼마 전 일본의 ‘전국금융문제대책협의회’라는 단체에서 행사 초청을 받았다. 일본의 전국적 조직인 이 협의회는 연 1회 금융 피해자와 관계자들이 모여 개최하는 행사다. 올해로 29회째다. 주로 변호사, 사법서사(우리나라로는 법무사), 피해자 상담소의 상담원, 금융 피해자들이 참여한다. 채무상황을 벗어나서 금융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람들, 현재 여전히 금융 피해자로서 구제받기 위한 과정에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모인다.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일본 전국 단위 모임이어서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임에 참석했다. 모임에서는 전체 개회식 및 사례 연구발표 등에 이어 30여개 주제를 가지고 분과별로 내실 있고 깊이 있는 연구발표 및 토의가 진행됐다.

 이 조직의 활동은 일본 금융시장 내에서 다양한 규제를 만들고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이자 제한 범위를 초과하는 금융업 또는 대부업자가 난무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 단체의 활동으로 군소 대부업자조차 연 17%가 넘는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30여년간 금융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바람막이 단체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일본 대부업자는 일본 내에서 이런 규제로 대부업 시장의 숨통이 막히게 되자, 한국으로 몰려와 한국에서 대부업 등록을 하고 높은 이자를 받으면서 일본에서 했던 짓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거론하기는 뭐하지만 텔레비전에 화장품 광고만큼이나 요즘 많이 나오는 것이 대출광고다. 대출카드 출시, 5분 안에 대출이 가능하다든지, 여자만 우대한다든지, 대출을 받으면 주식을 주네, 한 달간 이자를 면제하네 등의 사례가 그것이다. 모두 일본에서 대부업자가 써먹던 수법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 대부회사의 대표를 일본인이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달콤한 대부업자의 사탕발림에 속아 피해를 보고도 이를 구제받기 위해서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먼저 의식해야 한다. 아무도 그 사람의 억울한 심정을 들어주고 함께 해결해주고자 하는 곳이 없다. 한 번도 자금난에 시달려 카드깡이나 고리대금업자를 찾아가본 경험, 또는 직원 월급날이 돼서야 겨우 월급을 맞춰 가슴을 쓸어내려본 경험 정도가 없다면, 이런 상황은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대부업자를 통제, 관리할 시스템이 없다. 피해 발생 시에 이를 막아주거나 구제할 만한 대책도 없다. 금융 피해자나 다중채무자를 향한 곱지 않은 사회적 시각과 편견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고리대금업자의 활동을 그냥 둔다면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 여하와는 상관없이 하루아침에 주머니에 동전 한 닢 없게 되는 상황이 이어질 수도 있다. 의식 있는 법조인이라면 그들의 상황으로 들어가서 마음을 읽어주는, 그리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적극적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편견이 평가의 잣대나 집행의 근거가 돼서는 안 된다. 금융문제(과다채무)로 사회적 낙오자가 된 사람은 죄인(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인식과 사회적 제도가 조금 더 역지사지하는 정신으로 서로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처럼 단체가 만들어져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지원하고 보호해 줄 수 있는 활동이 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서선진 앤쌤 이사(법무사) salmi7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