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공간 한글 기업이 사라져 간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국내 오피스시장 점유율

 한글을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로 만드는 이른바 ‘디지털 한글’ 기업들이 사라지고 있다.

 한 때 수십개에 달하던 한글 서체 개발업체들은 이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한글과컴퓨터·넷피아 등 한글 솔루션 대표 기업들의 시장지배력도 급격히 약화됐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MS)의 독점이 심화되는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향후 국내 기업이 사라질 경우 디지털 한글 문화 위축은 물론 외화 유출도 극심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글날을 맞아 ‘한글 세계화’가 화두로 떠올랐지만, 디지털로 가까워진 지구촌에서 디지털 한글 제품과 비즈니스가 위축되면서 한글 세계화 역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디지털 한글’ 고사 위기=90년대 중반만 해도 워드프로세스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한 한글과컴퓨터의 ‘한글’은 이제 시장점유율이 18%에 불과하다. MS가 자체 조사한 국내 오피스시장 점유율에서는 한글과컴퓨터의 점유율이 불과 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면 5년내 국산 모국어 프로세스가 종언을 고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다.

 한글인터넷주소 서비스로 반향을 일으킨 넷피아는 지난 2006년 236억원에 달하던 매출이 지난해 74억원으로 무려 70% 가까이 폭락했다. 한글 서체 개발업체도 소프트웨어(SW) 불법복제가 횡행하면서 이제 산돌커뮤니케이션 등 대표적인 기업을 제외하고는 역사속으로 사라진 상태다.

 ◇‘디지털 한글’ 문화·경제적 가치 높아=전문가들은 ‘디지털 한글’ 국내 기업의 쇠퇴는 당장 디지털 한글 문화의 위축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MS워드가 처음 보급될 당시 조합형 입력방식이 지원되지 않아 일부 단어를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만약 조합형을 지원했던 한글과컴퓨터의 ‘한글’이 없었다면 MS워드에 조합형 기능이 업데이트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피아의 한글인터넷주소도 영어에 익숙지 않은 어린이나 노인들의 인터넷 이용률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국부유출 논란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워드프로세서로 대표되는 오피스 프로그램의 국내시장 규모는 약 21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한국MS의 주장대로 94%를 MS가 점유했다면 올해 1970억원 가량이 해외로 유출되는 셈이다. 향후 MS만 살아남으면 가격 대항마가 사라져 소비자들이 훨씬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한글인터넷주소 시장도 마찬가지다. 현재 한글인터넷주소 사업의 위축은 인터넷 주소창에 한글을 입력하면 해당 사이트로 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포털사이트로 연결되는 이른바 ‘가로채기’가 횡행하기 때문이다. 포털들이 키워드광고 수입을 올리기 위해 ‘가로채기’에 나선다. 그러나 한국 키워드 광고시장의 80∼90%가 미국 오버추어가 점유해 한해 로열티 수입으로 4000억원 가량을 가져간다. 한글인터넷주소 사업을 보호해주는 법·제도가 미비해 결국 외국 검색광고업체들의 배만 불려주는 셈이다.

 김영익 한글과컴퓨터 사장은 “한글이 단순한 문자기호를 넘어 민족의 얼과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듯, 이 같은 한글의 상징성을 모태로 개발된 한글SW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W”라며 “인재 기술력을 기반한 SW산업에서 외산 SW의 독점적 시장 지배는 국부유출뿐만 아니라 한국의 차세대 기술 인력의 부재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창의적인 민·관협력 모델 시급=‘디지털 한글’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기업마다 품질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정부가 ‘디지털 한글’ 기업의 비즈니스가 활기를 띨 수 있도록 법·제도를 정비하고, 지원해주는 것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하회신 넷피아 상무는 “한글인터넷주소라는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지만 한글인터넷주소 자원을 보장해주는 법이 없어 가로채기를 방치하고 있다”며 “디지털 한글 사업이 활성화되려면 이 같은 불합리는 정부차원에서 하루빨리 재정비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한글 세계화에 ‘디지털 한글’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위키피디아를 모델로 개발 중인 ‘한글지식대사전’은 좋은 사례로 꼽힌다. 한글을 배우고 싶은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온라인을 통해 손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응용 콘텐츠나 서비스 개발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각 기관별로 운영 중인 한국어 교육 사이트를 연계해 오픈키로 한 ‘u세종학당’도 마찬가지다. 현재 세계 17국에서 운영 중인 ‘세종학당’에 ‘u세종학당’을 기반으로 한국어 e-러닝 사업을 연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디지털한글박물관’ 등 창의적인 제품과 서비스 개발을 지원해 새로운 ‘디지털 한글’ 기업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장지영·김인순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