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新 인터넷] (1-1)­정부 규제 틀에 숨죽이는 민간 자율규제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정부규제 강화 이후 인터넷서비스 이용 패턴

‘해당 글은 권리침해신고 접수에 의해 임시 접근 금지 조치된 글입니다.’

 지난 3월 다음 블로그를 이용하는 모 이용자 글 가운데 ‘인터넷 영화예매 사이트 티켓xx가 어떤 사이트일까 궁금했다’는 글이 임시조치됐다.

 티켓xx 사이트의 불편함을 기술한 글이었지만 티켓xx 측의 요구에 의해 임시 제한 조치된 것이다. 게시자는 자신의 글을 복구하기 위해 다음 및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문의했지만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에 따른 접근 제한 기간인 30일이 지나도록 답변을 얻지 못했다. 결국 명예 훼손에 대한 뚜렷한 근거가 없다는 게 밝혀지면서 억울하게 30일이나 표현의 자유가 차단당한 것이다.

 다소 특별해 보이는 이 사례는 실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매일매일 우리나라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누군가는 글을 올리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이를 지우고 싶어한다. 포털은 그 사이에서 하루에도 수십건, 수백건씩 올라온 글을 삭제하고 차단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네티즌의 불만이 높아지고 다른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이 같은 일들이 증폭돼 알려지고,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지면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 인터넷이다.

 올해 들어 인터넷의 민간 자율규제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정작 자율규제 정착을 위한 조건들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포털의 임시조치는 시장원리에 의한 자율규제가 아니라 정보통신망법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주도하는 정부 규제의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전자신문이 국내외 전문가와 해외 자율규제 기구를 취재한 결과, 미국·독일·프랑스·일본 등 자율규제가 정착된 해외 선진국에서 정부 규제가 공고하게 버티고 있는 나라는 한 곳도 없었다. 말그대로 민간 자율규제는 민간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규율을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시장원리, 비즈니스 모델, 이용자 참여 등 복잡한 방정식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부 기구가 음란·선정성 심의부터 사행심 조장, 폭력·잔혹·혐오, 명예훼손, 사회질서 위반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심의를 벌인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규제 법안 발의는 민간 자율규제 정착을 더디게 한다. 이 같은 구조로는 민간 스스로 자율규제 기구를 만든다 해도 정부 규제의 2중대 역할 밖에는 할 수 없다.

 ◇현행 임시조치는 전형적 정부 규제=정부 주도 내용 규제에 따른 표현의 자유 제한 사례는 최근 1년만 해도 한두건이 아니다.

 환경 운동을 하고 있는 어떤 목사는 ‘1000마리 철새 떼죽음된 시화호 원인 조사해보니’라는 글이 임시조치 당했으며 지난 4월에는 블로거 ‘새벽ooo’씨의 ‘고의방화, 도심테러라고? 인두껍을 쓴 이들’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모 국회의원에 의해 임시조치가 취해졌다.

 지난해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공개한 포털에 요청이 들어온 임시조치 건수를 보면 지난해 1월에서 6월까지 네이버는 월 평균 8000건, 다음은 1430건 수준으로 나타난다. 2007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76%, 54%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사이버모욕죄 논란 등 포털에 모니터링 요구가 거세어지면서 올해도 임시조치 건수는 줄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임시조치가 전형적인 정부 규제라는 점이다.

 황성기 한양대 법대 교수는 “청소년유해물은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개인정보 유출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사법 영역이 해결한다면 남는 건 권리 침해와 명예훼손”이라며 “그러나 우리나라만 유독 사법부도 판단하기 힘든 사안을 인터넷 사업자나 행정 기관인 방송통신심의원회가 판단하는 구조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망법에 따른 처벌이 두려워 일단 임시 조치하고 보는 인터넷 기업들도 자율 규제의 설 자리를 찾기 힘든 구조”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최 의원의 같은 자료에 따르면 네이버의 임시조치에 따른 내용물 삭제 비율은 95%에 이른다.

 ◇견고한 정부 심의 구조, 민간 자율규제 정착 난망=지난해 5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처리한 통신·인터넷 관련 심의건수는 총 4만1583건이다.

 월평균 2900여건으로 주 5일 업무 기준 하루 평균 150건을 심의한다. 실무지원이 있긴 하지만 심의위원 9명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통신·인터넷 세상에서 권리침해, 음란, 사회질서위반 등의 다양한 사안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발빠르게 대응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명예훼손 소송판결은 최단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는 점에 비춰볼 때 초고속으로 시정이 내려지는 방통심의위의 구조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현행 구조는 사업자의 자율규제 의지를 희석시킨다는 맹점이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찌보면 명예훼손과 같이 골치 아픈 일을 정부 기관이 대신해 준다는 점에서 업체는 편할 수도 있다”며 “그러나 이런 구조로 가다보면 업계가 자율적으로 룰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못느끼거나 정부의 시책에 따라가는 시늉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 규제가 강력하면 할수록 실질적인 민간 자율규제 의지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자율규제 기구인 FDI의 이사벨 팔르 피에르탱 회장은 “지난 2005년 프랑스에서 경찰이 직접 인터넷상의 아동포르노 콘텐츠를 검열하고 수사하는 규제를 시행하려다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이를 자율규제로 흡수한 사례가 있다”며 “정부는 권력을 잠시 보류함으로써 자율규제 정착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