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PC가 킨들의 적”

 #. 달라스 공항에 앉아 무료하게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던 파스쿠알레 카스탈도(54)는 옆사람이 아마존의 전자책(e북) 단말기 ‘킨들’을 꺼내드는 것을 봤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e북 단말기를 준비해야 했나’ 하는 부러움에 사로잡힌 그에게 문뜩 주머니에 있는 블랙베리가 떠오른다. 혹시 e북 애플리케이션(앱)이 있을까 싶어 블랙베리 애플리케이션 장터인 ‘앱 월드’에 접속하니 반스앤드노블이 배포한 e북 프로그램을 내려받을 수 있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카스탈도 씨는 값비싼 e북 단말기 없이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나는 언제든 블랙베리를 갖고 다닌다”며 “그저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블랙베리로 이메일을 보내고, 트위터를 하는 것처럼 좋은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때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마존의 킨들이 싸울 경쟁자는 같은 선상에 있는 e북 단말기가 아닌 듯하다.

 17일 AP는 스마트폰과 PC가 e북 전용 단말기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뛰는’ e북 단말기 위에 ‘나는’ 스마트폰=킨들이 e북 시장을 띄우는데 한몫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출판협회에 따르면 킨들이 첫선을 보인 2008년을 기점으로 e북 시장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국제디지털출판포럼(IDPF)이 e북 시장을 집계한 2002년 이래 가장 큰 성장세를 기록했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 림의 블랙베리, 팜의 프리 등 인기 스마트폰에 전용 e북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면서 킨들을 위협하고 있다. 다양한 기능으로 비즈니스맨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은 스마트폰은 액정이 커지면서 e북을 읽기에도 더욱 적합해 졌다.

 반면 아마존의 킨들, 소니의 ‘리더’ 등 전용 e북 단말기는 전자잉크(e잉크)의 특성 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종이 화면같은 느낌을 만드는데는 성공했지만 e잉크의 기술적 한계로 컬러 화면 개발이 어렵고, 백라이트를 통해 화면을 밝히는 것도 불가능하다. 화면 표시가 느리고, 웹 브라우징 등 다른 컴퓨터 작업 용으로 쓰기 어려워 오로지 e북 단말기로만 활용해야 한다는 것도 비싼 값을 치르고 사는 소비자들에게는 부담스럽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포레스터리서치에 따르면 스마트폰용 e북 앱의 다운로드 건수가 킨들 판매량을 훨씬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용 무료 e북 앱인 ‘스탠자(Stanza)’는 1년이 못돼 다운로드 건수 200만건을 돌파했다. 디스커버(discover) 등 인기 e북 앱을 합하면 올해 1분기 킨들 판매량 약 90만대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라 로트만 엡스 포레스터리서치 연구원은 “전용 e북 시장이 분명 존재하지만 스마트폰 같은 복합 기기가 잠재적으로는 더 큰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PC도 만만치 않은 경쟁자=PC도 무시할 수 없는 경쟁자다. 시장조사업체 심바인포메이션이 올 봄 26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e북을 읽는 수단으로 가장 많은 이들이 애용하는 것은 PC였다.

 특히 전용 단말기를 살 여력이 없는 주머니가 얇은 소비자들이 PC를 고수하고 있다. 열광적인 독서가로 소개된 샤나 본은 “한 가지 기능에만 치우친 기기에 300달러를 쓸 생각은 없다”며 “이에 비하면 PC와 스마트폰은 모든 작업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독립 e북 업체인 북스온보드(BooksOnBoard)의 밥 리볼시 CEO는 전체 고객의 3분의 2가 PC를 통해 e북을 읽는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로맨스·스릴러·미스테리 분야 인기 소설을 5∼7달러에 공급해 인기를 끌고 있다.

 마이클 심바인포메이션 수석 연구원은 “e북이 탄생한 곳도 PC다”라며 “비록 성장세가 크지 않지만 늘 책을 읽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언제 어디서든 찾을 수 있는 PC만큼 매력적인 수단도 드물다”라고 말했다.

 차윤주기자 chayj@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