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BIZ+]view point-기업만 놀아난 인터넷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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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정부는 지난해 초 출범하자마자 각종 규제 완화 정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완화하는 기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이후 정부는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기준안을 마련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치 얼마 후면 우리나라에도 인터넷전문은행이 탄생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게다가 국책연구원인 한국금융연구원까지 나서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따른 금융산업 변화와 해외 주요 국가들의 인터넷전문은행 사례를 소개한 보고서를 내놓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많은 은행 고객들도 인터넷전문은행이 설립되면 더 저렴한 수수료로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점 확대에 한계를 겪고 있는 저축은행이나 온라인 증권사, 특수은행들은 곧바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몇몇 중소 금융사는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하겠다는 보도자료까지 배포하는 등 적극적인 의지를 표방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회사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기정사실화하고, 일부 영역이기는 하지만 관련 시스템 구축 작업까지 추진하기도 했다.

 그 후 1년 반 가량이 지난 지금,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던 금융사와 일부 기업들은 모두 그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이들 기업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백지화한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금융실명제법 적용 때문이다. 현행 금융실명제법에 따르면 계좌 개설을 위한 본인확인 절차가 필요한데, 반드시 대면확인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지점이 몇 개 없는 중소 금융사 입장에서는 대면확인을 통해 계좌를 개설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대면확인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지점을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굳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했던 중소 금융사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취지가 지점이 많은 은행이나 증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지점이 적은 중소 금융사를 위한 별도의 본인확인 절차를 마련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공인인증서를 통한 방식이나, 우편을 통한 방식, 설계사 방문 등 다양한 방법을 제대로 고민해 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실명제법은 지난 1990년대 초반 금융거래의 투명화를 위해 만들어진 규제다. 당시 횡행하던 차명계좌를 통한 불법적인 금융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따라서 금융실명제법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진 후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금융실명제법을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논의가 있어야 했다.

 금융실명제법 적용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자본금 기준안 등 다양한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데, 정부는 아직까지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결국 첨단 IT를 활용한 신개념의 금융거래 서비스가 오래 전에 만들어진 오프라인 규제 때문에 사실상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정책당국의 안일한 대응과 무책임한 정책 추진에 기업들만 놀아난 셈이 돼 버렸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