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슈퍼컴 백년대계’ 아직 안 늦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500대 슈퍼컴퓨터 리스트에 단 한 대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충격적인 소식이다. 정보기술(IT) 강국을 자부해왔지만, 정작 기초체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최근 들어 슈퍼컴은 과학기술 분야뿐만 아니라 금융·자동차·환경·국방·에너지 등 각 분야에 활용되는 추세다. 양질의 슈퍼컴이 바로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슈퍼컴 후진국’ 전락은 이미 예고됐던 사실이다. 지난 2003년 한때 6위까지 올랐던 한국의 슈퍼컴 순위는 2006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지난해에는 31위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하반기 500위대 슈퍼컴 발표에서 슈퍼컴 4호기가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을 때, 이미 ‘빨간불’이 커졌다.

 문제는 이 같은 현실에도 정책당국은 너무 느긋했다는 것이다. 수년간 슈퍼컴 육성법 논의는 무성했지만 정부든, 국회든 진지한 고민은 거의 없었다. 미국, 중국 등이 1990년대부터 각종 육성법을 만들어 범국가 차원에서 육성한 것과 비교하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슈퍼컴은 구축하려면 수백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슈퍼컴을 구축하더라도 성과가 바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활용 노하우가 쌓이고, 이를 바탕으로 계산과학의 역량도 축적돼야 한다. 기상청이 슈퍼컴을 도입했지만 아직 빛을 못 보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인프라 순위에서 500위권 밖으로 밀렸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심각한 문제다.

 결국 정책당국이 긴 안목을 갖고 뚝심 있게 육성하지 않는 이상 슈퍼컴 후진국 탈출은 요원하다. 슈퍼컴 활성화가 ‘빨리빨리’로 안 된다면 지금이라도 차근하게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