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인터넷 문화 차이 간과한 `본인확인제` 논란

[ET단상] 인터넷 문화 차이 간과한 `본인확인제` 논란

 최근 여러 건의 자살 사건이 보도된 이후 배후에 인터넷 자살사이트가 관여됐다고 해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인터넷의 역기능과 폐해를 어제오늘 본 것이 아니지만 이제 생명 경시를 조장하고 방조하기까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인터넷 역기능은 인터넷 참여와 소통을 방해하는 암과 같은 존재다. 인터넷이 표현 촉진적인 매체라고 해서 역기능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역기능을 해소하는 것은 인터넷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이 책임은 우선 국가에 귀속된다. 그 책임은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법률을 제정하고 더욱 유효 적절한 제도를 고안, 시행해야 하는 책임이다. 기업 역시 인터넷 매체를 제공하며 그에 따라 수익을 얻고 있는 이상 그와 비례해 책임도 부담해야 한다.

 논란이 된 인터넷 본인확인제가 있다. 본인확인제는 하루 10만명 이상의 이용자가 이용하는 게시판을 운영하는 사이트는 게시판 이용 시 본인임을 확인하도록 하는 제도로, 2007년부터 시행돼 오고 있다. 이 논란은 세계적 IT기업 구글의 한 임원의 발언으로 촉발됐다. 그는 한국에 있는 구글의 자회사인 유튜브 법인이 한국법상 본인확인제 적용을 피할 수 있도록 게시판 기능을 없앤 배경을 설명했다. 즉, 구글은 각국 법을 존중하지만 표현의 자유 침해에는 굴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발언이 있자 본인확인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인터넷정책 전반의 비판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논란은 제도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특정 법·제도는 한 나라의 문화를 반영한 결과다. 각국은 문화·사회적 배경에 따라 독특한 법 문화를 발전시킨다. 본인확인제는 그와 같은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떠나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다.

 본인확인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의 게시판, 댓글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큰 규모의 웹사이트는 물론이고 조그만 미니홈피나 블로그도 자유게시판, 댓글 기능이 없는 곳이 없다. 뉴스기사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린다. 그 과정에 명예훼손, 모욕 등 인격모독은 물론이고, 불법정보가 판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외국 뉴스기사에는 댓글 기능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가기관 등 공공기관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네티즌은 어떻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까. 뉴스기사라면 그 기사의 작성자, 정책이라면 담당자에게 e메일을 보내 의견을 표시하는 식이다. 따라서 게시판이나 댓글에서의 인터넷 폐해 경험이 부족하다.

 본인확인제는 우리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법문화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이 속한 사회의 눈으로만 특정 국가의 법문화를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본인확인제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인터넷 실명제라는 인식이 있다. 보통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 이용 시 자신의 실명을 표시하는 제도를 지칭한다. 그에 비해 본인확인제는 실명 표시까지 요구하지 않고 이명(異名)이나 ID명이 표시되는 것에 그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권리의 본질적 침해 가능성이 높은 인터넷 실명제와 현행 본인확인제를 동일시하는 것은 제도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본인확인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 문제점 개선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모든 규제정책이 그러하듯이 기업 활동에 장애가 될 정도의 재정 부담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표현의 자유를 덜 침해하는 방법으로 구성할 것인지, 기업이 제공받은 본인확인 정보의 보호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이 제도 시행이 기업의 자율규제 동력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닌지 등 시행과 관련한 제반 문제는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황창근 홍익대 법대 교수(변호사) wolgam@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