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무현 前대통령을 애도하며…

 그는 짧지만,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한국 정치사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 정치와 자본의 결합, 지역주의를 타파하려 했다. 지연과 학연의 맥을 끊으려 노력했고, 권위를 깨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지역 균형발전과 남북 화해 노력에도 앞장섰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그리고 취임, 낙향할 때까지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고, 원치 않았던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안따깝고, 애통하다.

 불과 1년여 전에 임기를 마친 상태에서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이르고 또 엇갈리지만, 우리는 정치와 돈의 오랜 부패 고리를 끊은 것을 가장 큰 업적이라고 본다. 그 역시 측근과 가족의 비리라는 암초를 피해 간 것은 아니지만, 재임 5년 간 정치와 재벌 기업과의 부패 고리는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단절됐다. 어느 정치인도 대놓고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측근들의 비리 역시 들춰졌지만 과거 정권에 비해 규모도 작았고 무엇보다 신속하게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하류라던 정치의 투명성이 한결 높아졌다. 정치와 돈이라는 여의도 생태계를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로 바꾸는 물꼬를 튼 것도 그였다.

 그는 분배의 경제를 앞세워 부자들의 지탄도 받았으나 소외된 계층을 보듬어 안으려는 의식이 먼저였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의 경제 정책은 인위적이고 양적인 발전보다 내실을 우선으로 했다. 당연히 경기 부양책을 내놓지 않는다는 비판과 무리한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도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단기적인 처방보다 긴 로드맵 아래 실질적인 경쟁력 제고에 집중했다. 재임 기간의 경제 성적표도 이전 정권에 비해 나쁘지 않았다. 되레 좋아졌다. 내실도 다져 놓았다는 평가다. 그 힘이 최근과 같은 글로벌 경기 불황에도 우리 기업들이 버티는 힘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는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 한 첫 대통령이다. 그래서 인터넷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당선의 영광을 안았으며, 인터넷을 통해 국민과 소통했다. 퇴임 후에도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심지어 마지막 말 마저 컴퓨터에 남겼다. 인터넷 여론에 너무 의존했다는 일부 비판도 있지만 어떻게든 국민에 가까이 가려 했던 그의 정신을 결코 해칠 수 없다.

 그는 깨끗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비리의 크기가 어디 있겠냐고 하겠지만, 전직 대통령과 비리의 크기에서부터 비교된다. 비교도 안되는 치부에도 그는 마음을 상해 했다. 비리와 스스로의 면죄부 발부는 전직 대통령들의 전례였다. 그들은 검찰 출두와 사과 성명, 짧은 기간의 감옥생활로 면죄부를 받고 다시 고개를 들고 행세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정치 선배로 한 수 지도하는 모습으로 국민 앞에 등장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결코 그들에게 면죄부를 준 적이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국민의 태도는 단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일 뿐이다.

 전직 대통령과 무척 달랐기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는 더욱 충격적이다. 비록 국민과 정책의 코드가 엇박자를 내긴 했지만 그의 저변에는 민주주의와 경제 개혁 의지가 같이 했다. 자존심을 지키려 한 대통령, 그래서 결국 죽음을 택한 그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자진이라는 극단적 행위를 해야만 했는지 우리는 그 방식에 동의하지 못할 뿐이다. 일찌감치 스스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렸지만, 그래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정치적 일이 많았다는 게 국민들의 판단이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되풀이한 비극에 정점을 찍었다. 더 이상 되풀이해선 안된다. 대통령 절대권력의 구조에선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헌정 질서를 당장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니, 권력 비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자중하고, 감시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그의 비극을 가뜩이나 사분오열된 국론을 더 흩뜨리는 데 이용해선 안된다. 청와대부터 일개 범부까지 장례 기간에 그가 남긴 덕목와 유산, 과제가 무엇인지 스스로의 자리에서 새삼 반추해볼 일이다.

 깨끗한 지도자를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은 노무현 전 대통령. 우리는 그를 곧고, 양심이 살아 있는 대통령으로 늘 기억하며 애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