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IT 입은 패션, 쇼핑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마음에는 들지만 홍보팀 영숙씨가 입었던 거야. 같은 옷은 싫어.” “완전히 내 스타일인데 빨간 무늬가 마음에 안 들어.”

 모처럼 큰마음먹고 나선 쇼핑이지만 유행처럼 상점에 걸려있는 비슷한 옷들 사이에서 고민하던 김양. 잠깐 멈춰 서는가 싶더니 결국은 오늘도 빈손으로 매장 문을 나섰다. 이번이 벌써 열두 번째다.

김양처럼 까다로운 고객들도 앞으로는 이런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 맞춤형 패션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옷’ 쇼핑 시대의 도래=최근 개인 맞춤형 패션 시장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공급자 중심의 한방향 패션이 아니라 양방향 소통에 기반을 둔 맞춤형 패션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패션업계에 부는 이 같은 바람은 첨단 정보기술(IT)과 통신기술을 디자인과 생산 과정에 적용하면서 가능해졌다. 이른바 ‘대량 맞춤화(mass customization)’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소비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옷’을 손쉽게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당연히 양산과 배송까지도 대량 맞춤화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 초고속 정보통신망, RFID, 대용량 데이터 저장기술, 3D, 물류 자동화 등 IT가 디자인·생산·유통 등 의류 제작 전 과정에 접목되고 있다. DTP(Digital Textile Printing) 기술 역시 다품종 소량생산의 또 다른 일등공신이다. DTP 기술이 없었다면 개성에 맞는 디자인을 각종 섬유 소재에 자유롭게 프린팅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활기 띠는 가상 피팅(fitting) 서비스=나와 똑같은 몸매와 치수를 가진 3D 아바타가 나를 대신해 옷을 입어주는 온오프라인 가상 피팅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고객의 피팅 정보가 3D 콘텐츠 DB 형태로 축적되면, 고객 선호도 분석이 가능해져 고객관계관리(CRM) 중심의 타깃 마케팅도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

가상 피팅 서비스는 2∼3년 전 상용화가 시도돼 왔다. 하지만 △인체 3D 스캔을 위해 옷을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모든 의상을 3D 콘텐츠화하는 게 쉽지 않으며 △매장에 3D 스캐너를 구비해야 하는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그러나 최근 미국 리바이스 매장에서 옷을 벗지 않아도 되고, 1분 이내 인체 스캔이 가능한 3D 스캐너의 보급이 이뤄지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가상 피팅 서비스가 확산일로다. ‘세컨드 라이프’ 개념의 확산, 터치스크린 등 새로운 UI를 구현한 DID(Digital Information Display) 기술 도입 등으로 국내업체의 적극적인 사업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성큼 다가온 대량 맞춤화 물결=올 상반기에 한 의류 브랜드 업체가 가상 피팅과 대량 맞춤 쇼핑 개념을 적용한 ‘패션 드레스셔츠’ 와 ‘패션 맞춤 원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색상과 소매 디자인을 선택하면 곧 바로 제조 현장에 정보가 전송돼 생산 및 배송으로 이어진다. FnC코오롱도 이미 골프의류 브랜드인 엘로드 매장에서 8종류 의류를 가상 피팅을 바탕으로 주문·생산하고 있다. IT와 의류산업이 만나 쇼핑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신세계몰을 통해 지난해 12월부터 온라인 가상 피팅 서비스를 시작한 신세계I&C는 지난 2월부터 이마트 일부 매장에서 고객들에게 손에 맞는 골프장갑을 만들어주는 ‘3D 글러브 피팅’ 서비스와 판매를 시작했다. 상반기에 이마트 수도권 전 매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세계 최초로 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를 신세계몰과 신세계백화점에서도 상반기에 제공하기로 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아바타에 피팅한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다시 불러와 구매할 수 있으며, 역으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아바타에 맞춘 콘텐츠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확인하고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맞춤형 의류 쇼핑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앞서 김양과 같은 소비자에게 ‘나만의 옷’을 살 수 있는 기쁨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기업체들이 ‘재고와의 전쟁’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기술개발 경쟁=지식경제부는 2006년부터 건국대학교, 신세계, FnC코오롱, 제일모직 등 기업과 함께 ‘i-패션 의류기술센터’ 구축사업을 추진, 맞춤 의류 생산, 판매 시스템 상용화를 도모해 왔다. 이 사업에 대한 해외 패션 및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이 뉴욕 맨해튼 i-패션 현지 매장 기획 및 i-패션 커리큘럼 편성을 제안해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 컴퓨터업체인 NEC가 신세계I&C와 협력해 이 사업을 공동 추진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조현욱 신세계I&C 유비쿼터스추진단 본부장은 “맞춤형 의류 사업이 시장검증 단계를 거쳐 점차 확대될 것”이라며 “컴퓨터 업체인 델이 주문형 생산방식을 도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의류업계도 주문형 방식을 적극 도입해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고, 공급자의 재고를 줄이는 그린 IT를 실현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