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인터넷은 자란다

[ET칼럼]인터넷은 자란다

 가끔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르곤 하는데 책장에 빼곡히 꽂힌 책을 보면 괜히 마음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눈으로 활자를 보고, 손끝으로 책을 넘기고, 종이 냄새를 맡는 오감의 충족은 온라인 서점이 주는 경제성·편리함과는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제목이 보이도록 책장에 꽂고 진열하는 이 익숙한 풍경이 매우 오랜 시간을 거쳐 이뤄진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중세엔 귀한 책을 보관하려고 쇠사슬을 주렁주렁 매달아뒀다. 17세기 책장은 높이가 무려 7m나 됐다고 한다. 책을 넣고 꺼내는 일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겠다. 심지어 책등이 밖으로 보이도록 진열하는 데 무려 1200년이 걸렸으며, 책장이 벽이라는 공간으로 가는 데도 1000년이나 걸렸다는 기록이 있다. 공학 칼럼니스트이자 미국 듀크대 교수인 헨리 페트로스키가 쓴 ‘서가에 꽂힌 책’에 나온 얘기들이다.

 사람들은 익숙해진 것을 으레 ‘처음부터’ 그랬으려니 하고 믿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어린이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불과 200여년 전만 해도 하루 16∼18시간 노동하는 어린이가 많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식의 죽음을 지금처럼 슬퍼했던 시기도 없었다고 한다. 라오스 일부 지역에선 장례식을 결혼식만큼 즐겁게 치른다고 하니 ‘죽음에 대한 슬픔’도 결국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당연해 보이는 것도 실은 숱한 오류의 반복을 거쳐 집단적 지혜의 축적으로, 치열한 투쟁 끝에 다듬어진 역사적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해 인터넷을 둘러싸고 온 사회가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정치권은 대립했으며, 정부와 네티즌은 갈등했다. 인터넷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듯 여겨졌다.

 그러나 인터넷에도 역사적인 경험치를 적용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누구도 지금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떤 현자(賢者)가 나타나 “10년 후 UCC로 인해 이런 피해가 있을 것이니 미리 대비하라”고 조언한다 해도 달라질 게 없다. 미래 예측은 준비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그 자체를 절대 도그마로 삼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짜여진 예측도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미래도, 사회도 그만큼 알 수 없는 변수로 가득 찼다.

 인터넷은 계속 자란다. 눈에 보이는 책과 책장도 수천년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하물며 인터넷이야 말할 필요가 있으랴. 좋든 싫든 지금 인터넷의 모습은 서비스 업체나 정부가 던져준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의 참여로 가장 최적화된 진화의 결과물이다. 악성 댓글에 상처받는 0.1%가 있지만, 응원 댓글에 용기를 얻는 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릇된 정보로 낭패를 겪은 사람도 있지만 유용한 정보로 좋은 기회를 얻은 사람도 많다. 그렇지 않고서야 3500만명이 인터넷에 들락거리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이 점에서 인터넷은 잘 자랐다. 다만, 정신적 발육에 사회적 지혜가 좀 더 모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가 인터넷을 규제가 아닌 진흥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일말의 불안감은 있다. 사건 하나만 터지면 모든 것을 금기와 규제로 해결하려는 일부 계층의 시각이 인터넷의 성장판을 닫아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넷토론회가 열렸다. “나이든 사람이 공부까지 게을리하면 인터넷 같은 젊은 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냐”며 끝까지 자리를 지킨 모 국회의원의 말은 참으로 타당하다. 인터넷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누구도 모른다. 그러니 자라나는 인터넷을 좀 더 유연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조인혜 미래기술연구센터(ETRC) 팀장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