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포스트 위피 시대에 거는 기대

[월요논단]포스트 위피 시대에 거는 기대

 이병기/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blee@snu.ac.kr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새해 4월 1일부로 위피(WIPI) 탑재 의무화 폐지를 결정했다. 이는 한국형 모바일 플랫폼 위피가 탑재되기 시작한 지 4년 만의 일이다. 위피 표준화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퀄컴이 자체 모바일 플랫폼 브루(BREW)를 개발해 우리나라에 적극 진출하기 시작한 직후였다. CDMA 핵심 칩과 원천특허로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가진 퀄컴이 우리나라 무선인터넷마저도 지배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정보통신부는 독자적인 국내 모바일 플랫폼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2001년부터 위피에 대한 기술개발과 표준화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듬해 미국은 위피 의무화가 기술무역장벽이라며 한미 간 통상문제를 제기했다. 정보통신부는위피 정책목표가 무선인터넷 이용자 간 호환성 확보에 있음을 주장하며 다각적인 노력을 펼친 끝에 2004년 미국을 설득할 수 있었고, 2005년 4월에는 위피 탑재 의무화를 시행할 수 있었다.

 위피는 의무화 이후 곧 휴대폰의 기본 모바일 플랫폼으로 정착했고, 국내 단말기의 약 86%에 탑재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 퀄컴의 기술료도 대폭 낮추는 효과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소프트웨어, 모바일 콘텐츠 업체들에 안정된 사업 터전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문제는 그 이후의 진화 과정에 있었다. 빠른 기술발전으로 휴대폰의 기능이 복잡해졌고 OS도 범용 모바일 OS로 발전했다. 세계 주요 제조업체, 이동전화 사업자, 인터넷검색 업체 등은 범용 모바일 OS 시장을 선점해 무선인터넷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피는 이러한 통신시장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범용 모바일 OS로 전환하는 세계 기술발전 추세를 따라가지 못했을 뿐더러, 당초 목표했던 위피 관련 콘텐츠 호환성도 약 11% 수준에 그쳤다. 위피 탑재 의무화는 적시에 착수된 좋은 정책이었으나 결국 경쟁력 있는 진화 발전을 못 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설사 위피의 발전이 순조로웠다 할지라도 4년 정도의 보호기간이면 마땅히 의무화를 폐지하고 자유경쟁으로 열어놓는 것이 바람직했던 터였다. 다만 국가 표준이라는 좋은 여건 속에서도 국가 ICT 발전에 충분히 기여할 수 없었음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위피 의무화 폐지는 특정 업체가 국내 모바일 플랫폼 시장을 장악할 우려가 불식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장차 여러 가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위피 개발자 그룹이 위기감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면 위피를 해외 제품과 필적할 만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또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 중에서 세계적인 범용 모바일 OS 제품을 개발하는 곳이 나오고, 국내 콘텐츠업체들이 창의적인 콘텐츠로 해외에 대거 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국내외 제조업체 간, 사업자 간 경쟁이 활성화돼 소비자의 단말기 선택권이 확대되고 가격과 서비스 품질에서 소비자 편익이 증대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포스트 위피 시대에는 범용 모바일 OS를 토대로 한 개방적 모바일 생태계가 국내에 형성돼 관련업체들의 건강한 경쟁 속에 모바일 콘텐츠, 소프트웨어, 단말기 및 서비스 업체들의 기술력이 크게 향상되고 해외 진출이 널리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