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ETRI가 뿔났다?

[데스크라인]ETRI가 뿔났다?

 CDMA 개발 이후 지상파 DMB와 와이브로 상용화로 대박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로 ‘뿔’이 단단히 났다.

일부에서는 ‘뿔’ 수준을 넘어 자괴 상태다. ‘일은 해서 뭐하냐’는 생각이다.

 지난 2004년 벤처 관련 비리를 뒤집어쓰고 2006년 무혐의 처리된 기술유출 건으로 압수수색까지 받는 난리를 겪은 이후 다시 2년 만이다. 감사원은 지난 8월 실시한 ETRI 감사 결과를 최근 발표하며 6개 항목에 걸쳐 징계와 주의를 통보했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사소한 것이든 실수에 의한 것이든 분명 잘못은 잘못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된 성과급 지급 등을 들여다보면 화가 날 만도 하다.

 우선 ETRI는 산업기술연구회 산하기관이다. 성과급을 포함해 웬만한 결정은 대부분 상급기관인 산업기술연구회 이사회의 승인 사항이다. 실상 ETRI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산업기술연구회는 지식경제부(과거엔 예산을 주로 주는 각 부처가 관리했기에 ETRI는 정통부 산하기관이나 다름없었다)의 정책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 연구회를 관할하는 정부부처가 이 또한 모를 리 없다.

 모두가 쉬쉬하고 있는 ‘와이브로’ 개발 뒷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광대역 직교주파수분할다중(OFDM) 기술로 시속 100㎞ 이상 달리는 차 안에서도 마음껏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휴대인터넷 기술인 ‘와이브로’의 R&D 계약 내용은 기관 측에서 보면 대기업과의 ‘불공정 계약’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기술개발에는 예산이 대략 300억원, 연구원은 수백명이 투입됐다. 이 기술은 제3세대 국제표준이 됐고, 최근엔 와이브로 에볼루션 기술개발까지 성공해 4세대 국제표준의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그럼에도 ETRI는 기술이전료를 한푼 받을 수 없다. 더군다나 매출액 대비 비율로 받는 러닝 로열티도 요구할 수 없다. 계약상의 문제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기관이 독단적으로 처리했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허만 공동소유일 뿐 와이브로가 대박이 날 경우 ETRI에 돌아오는 것은 박수받는 일 외에 없다. ETRI는 이 계약으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셈이다. 하나 더 있긴 하다. 최근 ETRI는 이 기술개발 공로로 ‘2008 과학기술 창의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상금은 1억원이다.

 ETRI는 결코 힘 있는 기관이 아니다. 그저 R&D하는 기관일 뿐이다. 감사와 평가만 1년에 서너 번씩은 족히 받는다. 툭 하면 감사고, 평가인 셈이다. 오죽했으면 연구원들이 업무 시간의 절반 이상을 서류 꾸미는 일에 다 쏟고 있다고 푸념하고 있겠는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만간 출연연에 구조조정 태풍이 불어닥칠 모양이다. 효율만 따진다면 매년 10%씩 인력을 쳐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효율제고로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실업자와 가정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보장 시스템이 아직은 선진국을 못 따라가는만큼 미국 방식이 그대로 맞을 리도 없다. 적절한 절충과 묘수를 찾아야 한다. 어쨌거나 이번 감사 건이 출연연 구조조정과 맞물려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