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인터넷과 싸우는 권력

 ‘대한민국의 연인’ 최진실씨의 충격적 자살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애도 분위기가 식기도 전에 여야가 갈라지고 누리꾼이 나뉜 채 삿대질과 욕설을 주고받는다. 최씨의 죽음에 ‘사이버 테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정부여당은 이참에 “이슬 같은 인터넷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기세등등이다. 사이버 모욕죄(일명 최진실법)의 신설이 핵심이다. 야당은 “기존 형법으로도 충분한 마당에 여권이 인터넷을 통제 조정하기 위해 억지법을 입안한다”고 결사항전이다. 누리꾼도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일단 여론의 흐름은 여권에 우호적이다. 국민 60% 가까이가 사이버 모욕죄 도입을 지지한다는 조사도 있다. 입법 여부는 어차피 선택의 문제다. 여야 모두 일정 부분 타당한 명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의 지지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호하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에 조건반사적으로, 혹은 인터넷에도 적절한 규제가 요구된다는 심정적 지지가 높을 것이다. 인터넷 모욕죄가 내포하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고 동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일방적이다.

 우려스러운 일은 우리 사회의 성숙도다. 본질적이고 예민한 법안을 사회적 합의과정 없이 기다렸다는 듯 들이미는 권력 엘리트들은 분명 정략적이다. 국민 정서가 클린 인터넷을 원하는데도 대안 없이 공안적 발상만을 탓하는 야권 역시 정파적 반대로만 보인다. 대중이 사랑하던 스타의 죽음이 어느덧 정치적 공방으로 변질됐다. 이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알맹이가 빠졌다. 사이버 폭력과 테러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다. 정부에서부터 누리꾼, 학자, 언론 모두 인터넷이 건강한 사회 공동체로서 자리 잡으려면 무엇을 반성하고, 바로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먼저다. 좀 더 진지하고, 정성을 기울여, 문화를 바꾸고 체질을 개선하는 대안을 도출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인터넷 참여 주체 모두가 각각의 자리에서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사이버 모욕죄 도입한다고 지금의 인터넷 역기능이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 발생할 때마다 규제부터 떠올리는 손쉬운 길을 갈 수는 없다. 소수의 악플러를 누리꾼 전체로 일반화·객관화하는 오류도 피해야 한다.

 온라인의 문제는 오프라인에서 비롯된다. 익명성과 해방감으로 온라인에서 좀 더 과격해지거나 감정적 표현 수위가 높아질 뿐이다. ‘다름’과 ‘틀림’을 헷갈리는 문화, 나와 다르면 반드시 제압하고 끝장을 봐야만 하는 문화, 집단 광기 표출에서 대리만족을 구해야 하는 문화, 배려와 존중이 실종된 문화는 결국 오프라인의 또 다른 투영이다. 오프라인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토론과 글쓰기 자세를 교육하고 누리꾼의 자정 능력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컴퓨터 모른다는 핑계로 방치하는 부모의 밥상머리 지적도 되살려야 한다. 시민단체들의 인터넷 문화운동도 보고 싶고, 정제되고 절제된 언론의 역할도 주문하자. 사이버 폭력범에게는 가중처벌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적용 불가능한 사이버 모욕죄가 아니라 기존 형법을 개정하거나 법조기관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다. 포털도 공격적이어야 한다. 일정 비율 이상의 욕설과 비방으로 채워진 문장과 댓글은 아예 자동 삭제하거나, 누리꾼 스스로 토론문화를 정화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찾아내야 한다. 이번만큼은 입체적이고 전 방위적인 인터넷 역기능 보완작업이 펼쳐져야 한다.

 인터넷은 다수 비주류의 열린 공간이다. 탈출구일 수도 있고 해방구일 수도 있다. 소수 주류에게는 늘 껄끄럽게 마련이다. 그러나 “당해 보지 않았으면 말씀을 마세요”라며 짓누르기보다는 그 장점을 보듬고 껴안으려는 전향적 시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 권력엘리트다. 그것이 배려와 존중이다. 인터넷과 싸우는 권력은 초라하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