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칼럼]뒤집어 보는 와이브로

 정부가 죽어가던 와이브로(휴대 인터넷)를 살리겠다고 나섰다. 최대 걸림돌이던 휴대폰 번호와 기능을 부여하고 심지어 주파수의 지존인 800㎒ 대역 일부를 할당하는 방안까지 검토한다. 와이브로 활성화를 겨냥한 ‘정책 폭탄’이다. 사업자들과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눈치껏 뭉개고 있던 정부의 와이브로 정책이 돌변한 셈이다. 와이브로는 IPTV와 더불어 일찌감치 성장동력으로 꼽혔다. 삼성전자와 전자통신연구원이 개발했다. 한국의 본원적 기술이 인정되는 분야다. 차세대 통신의 선제적 서비스는 물론이고 해외시장 개척에 따른 기술수출과 로열티 획득 기대가 한껏 부풀었다. 그럼에도 사업권을 갖고 있는 KT와 SK텔레콤의 투자는 지지부진이었다. 하나로텔레콤은 아예 라이선스를 반납했다. 뒤늦게 반전이 이루어졌다. 제4의 이통사업자 등장설까지 나온다. 유효경쟁을 통한 통신요금 인하에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정책 폭탄만으로 통신요금 내려가고 와이브로가 수출 전략상품이 될 수 있을까. 사업자들 논리는 간단하다. ‘돈’이 안된다는 것이다. 전국 커버리지 확보하려면 줄잡아 2조원 이상이 요구된다. 투자비 회수는 하세월이다. KT의 올해 가입자 목표는 40만명이다. 설혹 수백만명을 확보해도 계산은 ‘불가능’이다. 하나로가 라이선스를 반납한 원인이다. 주요 대도시만으로 커버리지를 제한하는 중재안도 가능하다. 그래도 소비자의 거부반응은 피해가지 못한다. 산간오지에서부터 지하철까지 팡팡 터지지 않는 이통서비스를 참아낼 소비자는 거의 없다. 이미 휴대폰에 길들여져 있다. 당장 반쪽 서비스니 뭐니 하며 안티 여론이 촛불이 될 것이다. 사용 친화력 역시 휴대폰에 뒤처진다. 3G시대가 열리면서 인터넷도 휴대폰으로 들어왔다. 가격 경쟁력으로 버틸 수도 있다. 이 역시 망 투자비와 주파수를 사용한다는 속성 탓에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 기술적 지원 주체도 삼성전자 단수체제다. 포스데이타를 포함해도 두 곳에 불과하다. 현실적으로 와이브로가 기존 이동전화(휴대폰)와 전면전을 벌이기는 어렵다.

 사업자들 속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와이브로 없이도 수익 창출하는 SK텔레콤이 굳이 천문학적 재원을 투입하면서까지 대체재 성격의 신규 서비스 도입을 서두를 까닭은 없다. 무선이라는 동력을 염원했던 KT가 상대적으로 열의를 보였지만 그마저도 사정이 달라졌다. KTF와 합병을 추진한다. 와이브로에 목을 맬 필요가 없어진다. 게다가 IPTV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돈’과 마케팅 등 경영역량의 분산을 원치 않을 것이다. ‘제4의 이통사업자’ 등장도 험난하다. 우선 거명되는 것은 케이블사업자들이다. 하지만 엄청난 초기 투자비와 불투명한 수익성이 발목을 잡고 있다. IPTV와 와이브로를 두고 저울질해 봐야 양쪽 모두 버거운 과제를 선결해야 한다. 재력과 인지도, 마케팅 파워를 갖춘 사업자 진입도 가정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연착륙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달릴 것이다. 재계 서열 10위권 이내 사업자들이 치고 받는 시장이다. 10여년 혈투 끝에 춘추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3강 정립구조가 구축됐다. 이 상황에서 어지간한 신규 사업자가 뿌리내리고 흑자 내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방통위가 와이브로 정책 의지를 천명한 것만도 반갑고 박수를 보낸다. 가는 길 험해도 기꺼이 깃발 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첫 단추는 끼웠지만 이제는 윽박지르기보다는 시장과 조율하고 타협하는 순서로 이행할 시점이다. 휴대폰의 경쟁자가 아닌, 보완재로서의 서비스 자리 매김이 우선이다. 외국 사례 벤치마킹하고, 기술 외교력과 정책 수단 세밀히 다듬어 한국형 대안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이 택 논설실장 ety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