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포럼]디자인 콘텐츠 분야의 남북경제협력

[통일포럼]디자인 콘텐츠 분야의 남북경제협력

남북경제협력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기업인인데, 지난 5월 말 1박 2일간 개성에서 경제협력회담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기존의 디자인 콘텐츠 개발용역 규모를 대폭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북측과 개발 수량을 늘리고 분야도 새로 추가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용역 금액도 두 배로 확대되었지만 남과 북이 서로 이익이 되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협상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날 회담이 있기까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많았다. 내가 기업인으로서 평양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03년 9월이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베이징에서 민경련 삼천리총회사 간부와 만나 의향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그 후 3년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2006년 4월에 개성에서 비로소 정식 계약이 체결됐다. 계약서 한 장을 쓰기 위해 무려 3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린 것이다. 하지만 첫 계약의 기쁨도 잠시, 곧 이 계약에 큰 결함이 있음을 알게 됐다. 개발에 투입되는 사람 한 명당 인건비를 정하고 그 수에 따라 매월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기로 한 조항이 문제였다. 통신·통행·통관의 3통이 어려운 조건에서 평양 현지 인력의 수와 실제 근무시간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계약에 따라 매월 일정한 고정금액이 송금됐지만 개발 실적은 생각에 비해 저조했다. 그로 인해 첫 1년간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투입되는 사람 수가 아니라 산출되는 결과물의 수량에 따라 금액을 지급하기로 계약을 변경할 필요성을 느꼈다. 2007년 6월 개성에서 북측과 재협상을 벌였다. 지난 1년간의 교훈을 바탕으로 반드시 재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야 했다. 이날 회담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해서 갔다. 개발된 결과물 중 남측에서 검수해 합격한 개수만큼 매월 개발용역비를 지급하겠다는 것이 우리 측의 주장이었다. 이날 협상은 예상대로 파행을 거듭했으며 여러 차례 결렬될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헤어지기 직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마지막 대화를 거쳐 극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이날 재협상을 계기로 남북 디자인 콘텐츠 개발 사업이 크게 도약할 수 있었다.

 2008년 5월 개성에서 남과 북은 다시 만났다. 기존 사업에 대해 양측이 모두 만족하고 있었으므로, 디자인 콘텐츠 개발 사업을 두 배로 확대하자는 우리 측의 제안이 쉽게 받아들여졌다. 또 추가로 프로그램 개발 분야의 협력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북측은 개발자들을 대량으로 선발하기 위해 앞으로 정신없이 바빠질 것 같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우리 아사달 역시 디자인 콘텐츠 및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의 우수한 인력을 저렴한 인건비로 활용할 수 있게 돼 상당한 비용절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북경제협력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상호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찾는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북측에는 잘 교육받은 우수한 인재가 많다. 이 인재들을 잘 활용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우수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제조업과 달리 지식산업분야는 사람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공장이나 기계와 같은 생산설비가 아니라 우수한 개발자들이 최고의 자산이다. 아사달은 북측 개발자들과 여러 차례 기술협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60년간 벌어진 문화적 차이를 조금씩 좁히고 있다. 비록 어려움은 있겠지만 앞으로 지식산업분야의 남북경제협력 사업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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