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연구팀 `팹리스의 힘`

 정보통신 인프라를 활용해 기업 내부에나 심지어 기업 간에도 프로젝트별 ‘가상의 연구팀(버추얼 R&D팀)’을 꾸려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상기업의 한 형태인 가상연구소인 셈이다. 프로젝트별 R&D TF는 인력이 풍부한 대기업이 오프라인에서 적극 활용해왔지만 최근 팹리스 업체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연구원들을 온라인에서 꾸리고 있다.

 팹리스 업체는 ‘가상의 연구팀’으로 대기업에 비해 취약한 R&D 능력을 보충하고 있는 셈이다. 단일 기업 내에서는 물론이고 서로 다른 기업 간 협업에서도 적극 도입되고 있다.

 서민호 텔레칩스 사장은 “해외 진출이 많아질수록 현지의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며 “한국과 해외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연구조직을 확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상하는 가상 연구팀=네트워크로 연결돼 하나의 연구팀처럼 운영된다. 프로젝트가 발생할 때마다 중국·한국·미국의 인력 중 적합한 인력이 참여한다. 최근 컨버전스 경향으로 칩이 하나의 기능만 수행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가상 연구팀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엠텍비젼(대표 이성민)은 지난해 캐나다와 국내 연구소 인력을 차출한 가상연구팀으로 고급형 멀티미디어 칩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엠텍비젼은 어레이 프로세서 전문인 캐나다 연구소를 축으로 각 지역의 인력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가상의 팀을 활성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텔레칩스(대표 서민호)도 국내에 편중됐던 연구 기능에 중국-한국-미국의 연구인력까지 통합하는 가상연구소로 재편했다.

 한발 더 나아가 업체 간 합동 가상의 팀을 꾸리는 사례도 나타났다. 코아리버(대표 배종홍)·칩스앤미디어(대표 임준호)·위즈네트(대표 이윤봉)는 각 사의 전문 개발력을 연계한 ‘가상의 회사(버추얼 컴퍼니)’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프로젝트가 생기면 각 사 전문 분야의 연구원이 하나의 팀이 된다.

 ◇인력 활용 극대화=가상 연구팀은 중소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글로벌 시장의 요구에 가장 빨리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지 AS 지원 정도에 그치는 해외 R&D센터의 인력도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활용 가능하다.

 이 때문에 텔레칩스는 현재 9명 수준인 중국 연구인력을 50여명으로 확대하고 디지털저작권(DRM)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미국 법인도 현재 3명에서 조직을 두 배 이상 확대한다. 엠텍비젼도 캐나다 연구소를 어레이 기술을 비롯한 고급형 제품에 필요한 기술 양성의 장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커뮤니케이션과 보안이 걸림돌=가상 연구팀은 멀리 떨어져 있는 팀원 간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는 것이 열쇠다. 윤진효 대구과학기술원 박사는 “명시된 지식(coded knowledge)을 사이버상에서 주고받는 것은 가능하지만 무언의 지식(tacit knowledge)은 반드시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나누어야 한다”며 “가상 조직이라고 해도 사이버상에만 의존하면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민 엠텍비젼 사장은 “일상적인 연구에서 커뮤니케이션은 네트워크를 통해 한다고 해도 프로젝트가 떴을 때에는 한국과 캐나다 연구소에서 정기적으로 오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네트워크로 모든 R&D 내용이 공유되기 때문에 기술유출 등의 보안문제도 큰 과제라는 지적이다. 아직까지는 가상 팀에서 보안사고가 발생한 적은 없지만 향후 개연성이 큰만큼 보안사고 예방책이 가상연구팀 활성화에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