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하이브리드 예술교육

[ET단상]하이브리드 예술교육

‘예술과 기술의 통합’이라는 모토로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가 바우하우스를 설립했다. 이로써 현대적 의미의 디자인과 디자인 교육이 시작됐다. 커리큘럼은 건축을 중심으로 조각과 회화를 통합하고 이론과 실무교육을 동시에 배우는 것으로 구성됐다. 바우하우스는 디자인을 ‘대량 생산을 위한 원형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예술가와 기술자가 함께 참여했다. 제품은 수공업자의 기술적 완성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미와 기능 그리고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까지 고려해 완성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즉 예술가와 엔지니어가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의 예술(art nouveau)인 디자인을 만든 것이다.

 지금은 고전적인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당시로는 상당히 새로운 시각의 출발이었고, 획기적인 디자인 교육의 발전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자신이 속한 학문 혹은 업계 분야에 대해 100년 전 바우하우스 시절보다도 더 보수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를 고수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시대를 위한 대학교육’이라는 글은 이런 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학문의 구획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추적하기 위해 우리 인간이 편의대로 만든 것이다. 진리는 때로 직선으로 또 때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데 우리는 스스로 쳐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안주하면서 잠깐 들렀다 가버리는 진리의 그림자를 붙들고 평생 씨름하고 있다. 이제는 진리의 행보를 따라 과감히 그리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어 넘나들 때가 됐다”고 말한다.

 자신의 전공을 운명처럼 떠받들고 사는 학생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앞날이 분명하게 정해진 듯 말이다. 주어진 운명에 맞춰 성실히 준비만 하면 평생이 보장될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전공이라는 명목하에 우리는 학문을 탐구하는 데 있어 여전히 옹졸함과 안이함에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디자인 예술교육도 마찬가지다. 아이디어 부재로 더는 개발의 여지가 없다 할 정도로 기술 수준이 하늘을 찌르는 하이테크 시대에 아직도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에 우리는 각을 세우고 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디자이너·예술가는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야 한다. 이제는 인간과 자연, 예술과 기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섭렵하고 그것들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새로운 유형의 크리에이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분야의 크로스오버·퓨전·하이브리드는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학문 간의 이분야 제휴(interdisciplinary)가 필요해진 것이다. 어설픈 복수전공이 아니며, 새삼스러운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의 이분법적 논쟁도 아니다. 하이테크 시대는 제너럴 스페셜리스트(general specialist)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종래의 경직된 교육은 이제 극복해야 한다. 활기찬 창작정신과 실용적 기술의 습득이 예술교육에서도 함께 강조되고 있는 시대다.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새로운 방법으로 과거 바우하우스가 현대 디자인의 새로운 장을 열었듯이 말이다.

 지금까지의 교수는 전공이 있고, 그 전공을 고수한다 해도 교육의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등장하는 차세대 디자이너·예술가들이 될 학생들에게는 전공을 넘나들며 문화 간의 협력을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고 창의적인 예술활동을 확장해갈 수 있도록 하이브리드한 예술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수능이 끝났다. 고생한 학생들은 이제 한숨 돌리겠지만 실기를 준비하는 예술 전공수험생들은 여전히 긴장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들 모두의 인생은 이제 곧 또 다른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상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예비 대학생들과 교육현장에 있는 교육자가 모두 되새길 시점이다.

◆강윤주 계원조형예술대학 교수 멀티미디어디자인과 kangyj@kay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