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팅 시스템이 통신 시장 넘본다

인텔의 ATCA 플랫폼 기반 통신용 서버
인텔의 ATCA 플랫폼 기반 통신용 서버

컴퓨팅 시스템이 통신영역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주요 서버 업체들이 통신 표준 플랫폼에 기반을 둔 통신장비 개발뿐만 아니라 망 설계, IP네트워크 기능을 탑재한 서버를 출시하고 통신 시장을 넘보고 있다. 그동안 서버 업체는 주로 통신장비 부속품을 단순 공급하거나 각종 서비스 구현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용 시스템 공급에 주력했지만, 최근에는 가입자나 백본망을 관리하는 코어 및 액세스 장비 시장에도 속속 침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컴퓨팅’ 주도의 통신장비 업계 재편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하고 있다.

 ◇ATCA 플랫폼 ‘태풍의 눈’=통신 분야에 컴퓨팅 업계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지난 2002년 ‘ATCA(Advanced Telecom Computing Architecture)’라는 통신 표준형 플랫폼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인텔을 비롯한 컴퓨터 제조업체가 주도해 개발한 ATCA는 통신장비에 컴퓨팅 기술을 도입한 것으로 조립과 업그레이드가 수시로 가능한 모듈러 형태(MCP)의 네트워크 플랫폼이다.

 ATCA 진영은 “기존 통신장비는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아키텍처에 일체형 장비로 업그레이드와 교체에 비용이 많이 든다”며 “통신 사업자가 변하는 시장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표준 플랫폼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TCA 진영의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ATCA를 주도한 인텔코리아는 최근 CPU와 입출력 성능을 높인 ATCA 2세대 제품 4종을 내놓았다. 한국썬도 지난 4월 AMD 옵테론 프로세서를 장착한 ATCA 기반 서버 ‘네트라 ATCA’를 블레이드 형태로 첫 출시하고 통신장비 업체에 납품을 준비중이다. 한국HP도 오는 8월 ATCA 기반 서버를 선보인다. 또 알카텔·NEC·모토로라 등도 ATCA 기반 통신 플랫폼을 출시했다.

 한국IBM은 인터넷전화(VoIP) 업체와 협력, 아예 전화국 교환기(PBX)를 대체할 수 있는 플랫폼을 8월 출시한다. 통합 서버인 i시리즈에 IP 텔레포니 기능을 탑재한 ‘시스템 I IP 텔레포니’가 그것이다. IP텔레포니란 데이터를 전송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음성 전달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다. 이 제품은 쓰리콤의 IP 애플리케이션을 내장한 것으로 전화시스템과 콜센터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음성·e메일 통합, 착신자 추적 서비스 등도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한국IBM은 이와 별도로 통신장비용 서버 ‘블레이드 센터 T’도 내놓는다. 블레이드 센터 T는 ATCA 플랫폼에 대응하는 제품으로 역시 모듈러 형태로 설계됐다.

 ◇All-IP시대, 컴퓨팅 파워 요구=통신 분야에서 서버 업체의 역할이 커지는 것은 차세대 네트워크가 IP 기반에서 음성·e메일 등 문자부터 동영상에 이르는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김호천 인텔코리아 이사는 “IP를 통해 다양한 멀티미디어를 선보이는 IMS(IP Multimedia Subsystem)가 통신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며 “더욱 향상된 CPU 성능과 입출력 속도 등 컴퓨팅 파워를 활용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컴퓨팅 업계는 ATCA와 같이 업그레이드가 쉽고 비즈니스 환경에 따라 변형 가능한 모듈형 플랫폼에 전통적으로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다. PC 제조사가 달라도 표준 스펙을 활용한 메모리·랜 카드를 공통 적용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선발 통신장비 업체와 신경전=이 때문에 통신장비 선발 업체와 후발 업체, 컴퓨팅 업체 간 미묘한 신경전도 감지되고 있다.

 인텔은 IT조사기관의 자료를 바탕으로 ATCA 등 컴퓨팅 기술이 기존 통신장비 시장의 20∼30%를 잠식, 2010년까지 7조∼8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시장을 지키려는 대형 통신장비 업체들은 ATCA에 다소 소극적인 반면에, 중소형 통신장비 업체들은 컴퓨팅 업체와 협력해 ATCA 기반 장비를 만들고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ATCA 기반으로 망을 설계하거나 장비 개발에 들어간 국내 업체도 있다. KT는 차세대 광대역통신망(BcN)을 ATCA 기반으로 개발키로 확정했다. 이번에 도입한 ATCA 플랫폼은 저전력 듀얼 제온 프로세서가 탑재된 인텔 넷스트럭처·MPCBL0001 싱글보드 컴퓨터·MPCHC0001 섀시·섀시 관리모듈을 탑재한 것으로 장비 솔루션업체인 브리지텍이 공급했다.

 전자통신연구원(ETRI)도 최근 고성능 라우터를 개발하면서 개발팀 간 공동 플랫폼으로 ATCA를 채택했다. 해외 사례로는 후지쯔가 최근 NTT도코모에 ATCA 기반으로 통신장비를 개발, 납품했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