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 혁명이 시작됐다](40)선진 유비쿼터스 현장을 가다-⑤인텔의 전략

 “인텔은 유비쿼터스 세상에서도 컴퓨팅 기술을 가장 앞에서 선도할 것이다.” 지난 9월 16일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는 세계 IT산업을 이끄는 거인, 인텔이 전세계의 주요 고객사를 대상으로 기술전략을 소개하는 인텔개발자포럼(IDF)을 개최했다. 인텔이 매년 봄과 가을에 여는 IDF는 세계 IT산업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거대한 행사로 전세계 IT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번 2003 추계 IDF의 화두는 단연 ‘유비쿼터스 컴퓨팅’이었다.

 

 인텔은 보다 빠른 PC, 서버용 반도체 개발에 주력하던 전통적 기술전략에서 벗어나 모든 반도체 내부에 무선통신기능을 통합시켜 진정한 의미의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구현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고 이 같은 뉴비전을 행사기간 내내 전세계에서 몰려든 수천명의 IT전문가들에게 거듭 강조했다. 이는 세계최대의 반도체 회사인 인텔이 차기 유비쿼터스 컴퓨팅 분야에서도 시장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출사표를 던졌으며 세계 IT산업의 판도가 이미 유비쿼터스란 거대한 물결 속으로 빨려 가고 있다는 명백한 방증이기도 하다.

 반도체산업의 거인, 인텔이 구상하는 미래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번 IDF행사에서 인텔은 유비쿼터스 컴퓨팅에 대한 대중들의 고정관념을 뒤바꿀만한 혁신적인 휴대형 정보기기 ‘퍼스널 서버’의 전형을 공개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 퍼스널 서버는 전세계에 이미 수억대나 보급된 PC를 이용해서 언제 어디서나 개인적인 컴퓨팅 작업을 하게 만들자는 지극히 실용적인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물건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기존 개인용 컴퓨터 중에서 핵심적인 데이터 저장장치만 간편하게 휴대하고 거추장스런 키보드, 모니터 등 입출력 장치는 장소에 따라 외부 PC장치를 빌려서 사용하는 ‘호주머니 속의 미니 PC’개념을 구현한 것이다. 이 퍼스널 서버는 3∼4년 뒤에 상용화될 예정인데 사용자가 네트워크 접속기능을 내장한 대용량 스토리지를 호주머니에 휴대하게 된다. 사용자가 컴퓨팅 작업이 필요할 때 퍼스널 서버는 블루투스 같은 근거리 무선접속기능을 이용해 가장 가까운 장소에 위치한 PC, 키오스크, PDA 등의 입출력 장치에 접속해 마치 자기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전용 데스크톱PC처럼 만들어 준다. 요즘 보급이 급증하는 휴대향 USB 저장장치에 무선접속기능이 들어가고 데이터 저장용량이 수십, 수백배로 늘어난 미래형 스토리지 제품이라고 상상하면 된다. 사용자는 손목에 찬 시계를 통해서 PC서버와 인근 컴퓨터의 입출력 장치를 제어할 수 있고 퍼스널 서버본체는 휴대폰만큼이나 작고 가벼워 호주머니, 핸드백 등에 넣은 채로 하루종일 부담없이 휴대할 수 있다.

 인텔연구소에 퍼스널 서버를 개발 중인 로이 원트 연구원은 이상적인 모바일 컴퓨팅 환경을 구현하려면 휴대폰 등을 통해 초고속 무선네트워크에 수시로 접속해서 필요한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것보다 개인용 데이터를 작은 저장장치에 담아 휴대하면서 기존의 컴퓨터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이 비용, 효율면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퍼스널 서버가 컴퓨팅 기능이 떨어지는 PDA와 항시 휴대하기에 무거운 노트북PC의 단점을 모두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구현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흔히 미래의 모바일 컴퓨팅에 대해서 온몸에 키보드, 모니터, 각종 컴퓨터장비를 주렁주렁 걸치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문명세계에는 이미 가동중인 PC장비가 최소 6억∼7억대가 깔려있기 때문에 거추장스런 입출력장치를 굳이 착용할 필요가 없지요.”

 로이 연구원은 사이보그처럼 요란하게 전자장비를 입고 다니는 웨어러블 컴퓨터는 결코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며 조그만 퍼스널 서버가 언제 어디서나 개인적인 컴퓨팅작업을 처리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구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는 2006년경부터 시중에 선보일 퍼스널 서버에는 너무도 당연하게도 인텔의 고성능 반도체칩(인텔 인사이드)이 내장될 예정이다. 결국 인텔은 자신들이 구축한 PC제국을 기반으로 유비쿼터스 컴퓨팅 세상을 열어간다는 계획표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세상을 겨냥한 인텔의 야심은 행사 마지막날 팻 겔싱어 인텔 최고기술책임자(CTO)가 100년전에 제작된 구형 모르스 무선통신기(사진) 앞에서 라디오의 르네상스시대가 도래한다는 기조연설에서 절정을 이뤘다. 팻 겔싱어는 향후 개인과 가정, 사무실의 모든 정보기기에 라디오(RF)기능이 부여될 것이며 이를 위해 인텔은 모든 반도체에 기존 RF기능을 접목하도록 CMOS 프로세스기반의 실리콘 라디오를 상용화해 ‘라디오 프리(Radio Free)’ 전략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인텔은 이같은 목표에 따라 반도체 안에 저전력 디지털 RF모듈을 삽입하는데 필수적인 0.18 마이크론 CMOS 프로세스 기술을 이미 개발해둔 상황이다. 팻 겔싱어는 향후 PC와 PDA용 CPU, 이동전화단말기용 모뎀칩 등 각종 반도체에 CMOS기반의 무선통신기능 블록을 접목시켜 별도의 RF칩을 없애고 모든 정보통신기기를 연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은 올들어 무선통신기능을 내장한 센트리노 노트북PC. 특히 노트북PC를 장시간 들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든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터리 절약 기술과 무선통신 관련 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또 디지털홈을 겨냥한 UPnP, 3세대 이동통신 등 무선통신 환경을 주도하고 지구촌 곳곳에서 유비쿼터스 시대에 대비한 디지털 컨버전스 혁명을 이끌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번 추계 IDF를 통해 인텔은 그동안 주력해온 PC와 서버 컴퓨터용 CPU위주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모든 정보통신기기를 와이어리스 환경으로 묶어 진정한 의미의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구현한다’는 비전을 전세계 IT업계에 밝혔고 최근의 IT기술흐름과 환경변화가 유비쿼터스로 움직이고 있음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100년전 무선 모르스 통신기의 출현이 대륙과 바다를 건너 지구촌을 하나의 동시간대로 연결했듯이 인텔은 반도체에 라디오기능을 접목시켜 온 세상을 유비쿼터스로 엮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모든 사물에 컴퓨팅기능이 들어가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과 관련해서 일부 사람들은 수십년 후에나 실현될 일인데 너무 앞서 간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곤 했다. 물론 대학 연구소가 주장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은 한낱 연구실 안의 재미있는 실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텔이란 거대 IT기업이 주장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미래상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IT문명의 한 축을 만들어낸 기업이 바로 인텔이기 때문이다.

 <특별기획팀>

 ◆ 인터뷰 - 로이 원트 인텔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원 

 인텔의 로이 원트 수석연구원은 현재 인텔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전략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그는 지난 91년 제록스의 파올로 알토 연구소에서 유비쿼터스 컴퓨팅 프로젝트를 맡았으며 인텔에 스카우트된 이후에는 퍼스널 서버라는 독특한 컨셉트의 모바일 컴퓨터를 개발해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최고 전문가로 주목받고 있다.

 ―퍼스널 서버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한낱 기계덩어리에 불과한 PC를 당신의 것으로 만드는 핵심요소가 무엇인가. 바로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당신의 데이터 파일이다. 기존의 모바일 정보기기는 디스플레이와 키보드의 크기 제약 때문에 더 이상 작아지지 못하고 있는데 무선접속이 가능한 대용량 휴대형 저장장치는 모바일 컴퓨팅의 문제점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퍼스널 서버가 언제쯤 실용화되겠는가.

 ▲향후 3∼4년 내에 대당 300달러 이내 가격으로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다. 퍼스널 서버는 지갑이나 포켓, 언젠가는 신발 뒤축에도 들어갈 수 있다. 퍼스널 서버는 무겁고 거추장스런 입출력 장치를 손톱만한 RF모듈로 대체했기 때문에 기능이 떨어지는 PDA와 노트북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유비쿼터스컴퓨팅과 웨어러블 컴퓨팅환경을 구현할 것이다.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개발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사람들은 유비쿼터스란 개념을 너무 거창하게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지구상에는 이미 누적대수로 각각 10억대의 PC와 핸드폰이 보급된 상황이다. 이제 현대인은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정보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구현하는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안이다.

 <미국 새너제이=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