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 혁명이 시작됐다](38)선진 유비쿼터스 현장을 가다-③카네기멜론대(상)

 피츠버그는 철강왕 카네기와 금융자본가 멜론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대의 철강, 석탄, 유리 산업도시의 이미지에 전통산업의 젖줄이 됐던 금융 도시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철강 업종 등이 쇠퇴하면서 경기가 수그러들자 산업기반이 없어진 피츠버그는 석탄 매연으로 가득한 최악의 오염도시라는 오명을 갖게됐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취재단은 피츠버그가 유비쿼터스 컴퓨팅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란 선입견을 갖고 피츠버그에 도착했다. 그러나 피츠버그 도심에 당도했을 때 우리 눈앞에 펼쳐진 피츠버그의 첫인상은 더이상 한때의 영화를 그리워하는 옛도시의 모습이 아니었다.

 1000개의 다리가 걸쳐진 강물이 도심을 흐르고 그 가운데 섬처럼 놓인 중심 번화가에는 유럽 도시를 연상케 하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현대적인 건물이 사이좋게 들어서 전통과 변화의 조화를 빚어내고 있었다.

 시청에서는 석탄 공장의 매연으로 까맣게 그을린 건물 외벽을 화학약품으로 지우는 대공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도심 곳곳에는 인텔, 보쉬 등 대기업이 투자하는 연구개발센터 설립 공사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세계적인 규모의 병원과 요양시설은 미국뿐 아니라 해외 각국의 은퇴한 부호들을 피츠버그로 불러모으고 있다. 이 도시는 또 검색엔진 선두기업 라이코스와 e비즈니스업체 프리마켓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피츠버그는 바야흐로 정보기술(IT)과 서비스 산업을 동력으로 삼아 재도약을 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전미 소프트웨어공학분야 1위 대학인 카네기멜론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이 대학은 1900년 철강왕 카네기가 만든 카네기 연구소(지금의 카네기공대)로 출발했으며 1967년 금융연구소인 멜론 연구소가 합병해 종합대학으로 거듭났다.

 이 대학은 아이비리그 대학들보다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 보안, 로봇, IT정책 등 정보기술 분야에서 1, 2위를 다투며 피츠버그에 수많은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취재진은 카네기멜론대학이 갖고 있는 유비쿼터스 전략을 취재하기 위해 전략기획을 총괄하는 라즈 레디 교수를 만났다. 클린턴행정부에서 백악관 정보기술 자문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레디 교수는 컴퓨터공학분야에서 손꼽히는 석학이다.

 레디 교수는 카네기멜론대학의 유비쿼터스 전략에 대해 한마디로 “통일된 전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대학 내에서도 수많은 교수와 연구진들이 비슷한 주제를 놓고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예를 들자면 유비쿼터스 보안 문제를 놓고도 상반된 논리를 가진 교수들이 각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가지고 승부를 한 후 더 나은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카네기멜론대학의 방식이었다. 상아탑에서도 현실 세계 못지 않은 경쟁논리가 지배하기 때문에 경쟁력있는 연구 산물이 나올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네기멜론대학에서 유비쿼터스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연구소는 크게 다섯 곳이다. 라이코스 창업자인 마이클 볼든이 근무한 곳으로 더 유명한 랭귀지 인스티튜트, 자동차 유비쿼터스 환경을 연구하는 GM 랩, 보안을 연구하는 컴퓨터커뮤니케이션보안센터(C3S), 미래 유비쿼터스 환경의 지능형 빌딩을 개발하는 빌딩 퍼포먼스 다이어그노스틱스 센터, 유비쿼터스 컴퓨팅 프로젝트 아우라(aura)를 주관하는 페터 스팅키스테 교수 연구팀이다.

 랭귀지 인스티튜트에서는 가상 공간에서 사람 대신 일을 처리하고 사용자와 대화를 주고받는 에이전트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GM랩에서는 자동차에 탄 운전자 상태와 외부의 위험을 스스로 파악해 운전 환경을 쾌적하고 안전하게 조절하는 기술이 개발 중이었다. 빌딩 피포먼스 다이어그노스틱스 센터에서는 풍향과 채광 등 자연 조건을 최대로 이용한 자연친화적인 건물을 구상하고 있었다. C3S에서는 유비쿼터스환경에서 차세대 보안시스템을 개발 중이며 아우라팀에서는 눈에 보이지않는(invisible) 퍼베이시브 컴퓨팅 기술과 인프라를 설계하고 있다.

 

 ◆ 랭귀지 인스티튜트 - 하이미 G. 카보넬 교수

 ‘언어의 장벽과 공간의 제약 없이 모든 인류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세상’

 하이미 G. 카보넬 박사는 가상 에이전트 기술을 이용하면 이런 미래 세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에이전트는 인간의 분신이자 비서같은 존재입니다. 스케줄을 조정해주기도 하고 가상공간에서 비즈니스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통역 에이전트가 끼어들고 손목에 찬 위성항법장치(GPS) 시계를 이용해 건강상태를 체크해주기도 합니다.”

 에이전트는 사람 사이뿐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을 매개해준다.

 카보넬 박사는 이러한 에이전트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려 더욱 다양화한 레이더(RADAR)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에이전트는 군사, 금융, 서비스, 정보기술, 환경 등 다방면에서 인간의 업무 능률을 높이고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는 일을 맡게 될 것입니다.”

 카보넬 박사는 인공지능을 가진 에이전트가 향후에는 사람의 감정 상태까지 파악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에 등장했던 인조인간 소년의 눈물을 현실에서 보게 될 날이 다가올까. 카보넬 박사는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과 사람 뿐 아니라 사람과 사물의 커뮤니케이션까지 완벽하게 이뤄지는 바램을 갖고 있었다.

 랭귀지 인스티튜트는 지금 인류가 도전에 실패했던 바벨탑을 가상공간에서 다시 쌓고 있는 중이다.

 

 ◆ GM랩 - T. E. 슐레진저 교수

 “유비쿼터스는 더이상 PC에 우리가 붙잡혀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슐레진저 박사는 운전자가 두 손을 핸들에 고정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동차와 통신을 하고 각종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 한 예가 자동차에 내장된 컴퓨터가 운전자의 눈동자 움직임을 인식해 반응하는 기술이다.

 “고급자동차에 있는 항법장치(내비게이션)의 경우 미래에는 손을 대지 않고도 눈동자의 방향에 따라 지도가 아래위로 이동, 가고자 하는 위치가 표시된 지점을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GM랩에서 연구하는 또 한가지 기술은 이른바 임시 네트워킹(ad-hoc network). 도로 위를 주행하는 차들 간 무선 네트워크를 형성해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해 준다.

 정보관제센터에서 자동차의 움직임을 체크하고 옆 차로를 달라는 차에게도 내 정보가 전달된다면 이 과정에서 발생할 사생활 침해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 이 문제에 대해 슐레진저 박사는 기술뿐 아니라 사회 현상, 법규 등 모든 변수를 염두에 두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인류가 좀더 윤택한 생활을 살아가게 하는데 있습니다. 기술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구팀은 대학 내 엔지니어링&퍼블릭팔러시 학부와 공동으로 기술 개발 초기 단계부터 기술 발전에 따른 공공 법률 및 정책 변화를 연구하는 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 C3S 보안연구소 - 프라딥 K. 코숄라 교수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가 실생활에 구현되는 데 최대의 장애물은 뭘까. 카네기멜론대의 교수들은 무엇보다도 ‘보안’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물에 컴퓨터가 장착되고 사물들끼리 의사소통을 하게 되면 사람들의 생활이 편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모든 게 네트워크로 이뤄진 만큼 해킹의 우려가 많아지고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게 된다. 개인 사생활 침해 문제도 커다란 문제다.

 코숄라 교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실행(action)을 위한 것이며 한번 켜지면 영원히 돌아가는 시스템이고 재부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각종 보안 문제들을 중요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역으로 보안의 문제는 네트워크의 문제로 연결되며 이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코숄라 교수는 100% 완전한 보안이 불가능하며 전 세계적인 협조가 수반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국가가 적절한 보안 연구소를 갖추고 이들이 서로 연대해야 바이러스 사태, 해킹 공격,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보안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보안애 대해 교육 시키고, 바이러스 등에 대해 강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네기멜론 대학의 보안 연구는 미 국방부 프로젝트인 ‘다르파’(DARPA)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코숄라 교슈는 “카네기 멜론대학의 보안 연구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협력을 할 수 있다”며 세계를 대상으로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에 맞는 보안 연대를 제안했다.

 

 ◆ 빌딩 퍼포먼스 다이어그노스틱스 센터 - 폴커 하트코프 교수

 “지구의 자원은 유한합니다.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지능형 생활 환경을 연구하는 폴커 하트코프 교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시대를 자원의 최적화에 활용한다. 컴퓨팅과 네트워킹을 통해 자연친화적인 생활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의 연구다.

 하트코프 교수는 현재 세계인들의 생활 환경은 자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으로 추후에 커다란 문제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하트코프 교수는 “현재 미국 에너지 사용의 40%가 건물내 공기 순환, 냉난방, 조명 등에 사용된다”고 말했다.

 하트코프가 지도교수로 있는 연구실에서는 사람이 있을 때만 전등이 켜지고 자연광을 건물이 스스로 알아서 조절해주는 환경, 지하수와 자연광을 이용해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 온도를 조절하는 건물 등을 설계한다.

 이 연구실에서는 컴퓨팅 환경, 네트워크 환경, 물리학의 원리 등 모든 방법을 활용해 새로운 개념의 생활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첨단기술을 활용해 인간이 무작정 편해지는 것을 연구한다기보다는 환경은 말 그대로 ‘최적화’시키는 데 기술을 응용하고 있다.

 하트코프 교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등의 목적이 무엇인지 먼저 곰곰히 생각해야 하며 이같은 방법을 통해 자연과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팀장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 배일한 기자 bailh@etnews.co.kr,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 성호철기자 hcs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