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아젠다 u코리아 비전>제1부 제3공간의 등장(8)제3공간의 이주전략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제3공간 이주전략의 세가지 관점

 혁명은 지배 세력의 판도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지배 세력의 변화는 사회적 공간 질서의 전환과 함께 인구의 대이동을 불러온다. 농업혁명은 유목민의 정주공간을 변화시켰으며 양반과 상민이라는 신분 공간이 허물어지면서 인구의 사회적 대이동을 초래했다. 산업혁명이라는 기술혁명은 도시혁명이라는 공간혁명으로 이어졌으며 농촌에서 도시로 향하는 거대한 인구 이동을 불러왔다. 그 결과 도시는 더욱 거대해졌다. 그리고 21세기 초에 창조된 전자공간과 유비쿼터스혁명으로 촉발된 제3공간의 등장은 물리공간에 존재하던 인구와 기능의 대이동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의 대이동은 혼란을 초래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정체도 불러왔다. 전자공간을 향한 맹목적인 이동은 벤처기업의 신화를 가져온 동시에 투기와 거품으로 인한 어두운 그림자를 몰고온 것도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제3공간으로의 이동이 맹목적으로 이뤄진다면 또 한번의 혼돈과 거품이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역사 발전 궤도에서 탈선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제3공간으로 이주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제3공간의 등장을 바로보는 시각에는 양극화·중첩화·융합화 등 세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이들 관점은 물리공간과 전자공간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들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제3공간으로의 이주 전략도 양극화·중첩화·융합화 등 세가지 관점으로 구분되며 각각의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전략이 도출된다

 전자공간으로의 대이동은 양극화 전략에서 출발한다. 양극화 전략은 전자공간에서 비교우위를 갖는 기능들과 그 기능의 제공자와 수혜자들을 모두 전자공간으로 이주시켜야 한다는 전략이다. “미래의 주식시장은 거래장소가 사라지고 온라인이 이를 대체할 것”이라는 찰스 슈왑의 주장은 양극화 전략을 간단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심장으로 표현되는 주식시장도 물리공간에서 전자공간으로 이주하고 있는 셈이다.

 양극화 전략의 목표는 효율성이다. 물리 공간상에서 발생하는 마찰과 비용은 전자공간으로 옮겨지면서 사라진다. 불필요한 비용 발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도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다. 전자공간이 가져온 거리-제로, 마찰-제로, 비용-제로의 신무기는 물리공간의 기능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시킨다. 따라서 물리공간은 전자공간과 차별화됨으로써 생존할 수 있다. 서점도 이제 단순한 서적 판매를 넘어 아늑한 쉼터와 놀이공간을 제공할 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전자공간과 차별화되지 않는 물리공간은 점점 견디기 힘들어 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효율성을 기준으로 한 공간간의 이동은 강제할 필요가 없다. 물이 보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르듯, 서비스 제공자들은 보다 적은 비용을 제공하는 전자공간을 향해 빠르게 이주한다.

 중첩화 전략은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이 유사한 기능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다. 중첩화 전략의 목표는 효율성이 아니라 형평성 또는 신뢰성이다. 양 공간에서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중복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중첩화 전략은 고객들을 전자공간으로 이주할 것을 명령하지 않는다. 중첩화 전략은 전자공간 고객들에게는 전자공간을 통해 서비스하고 물리공간에 남아있는 고객들에게는 기존의 방식대로 서비스한다.

 중첩화 전략은 비용이 많이 드는 전략이다. 따라서 서비스 제공자는 자발적이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중첩화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공공 부문 서비스는 중첩화 전략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민간부문의 서비스 제공자도 자발적으로 중첩화 전략을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물리공간과 전자공간 중 어느 한 공간에서만 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보다 양 공간에서 서비스가 제공될 때 신뢰성이 높아지고 고객의 편리성도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스턴 컨설팅그룹의 보고서에서도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고객들의 주문비율, 구매비율, 재구매비율이 전자공간만을 이용하는 고객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결국 중첩화 전략은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이익도 높다.

 융합화 전략은 양극화의 입장과 중첩화의 입장을 모두 지양한다. 융합화 전략은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인구와 기능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통합한다. 융합화 전략은 과거의 기능들을 인위적으로 최적화시키거나 안전성을 극대화시키지 않는다. 그보다는 새로운 기능을 창조한다. 새로운 기능과 시장이 창조됨에 따라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은 또다른 관계와 위상을 얻게 된다. 이를 통해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의 공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융합화 전략은 물리공간과 전자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어디까지가 물리공간이고 어디에서부터가 전자공간인지가 불분명해진다. 양극화 전략과 중첩화 전략이 인구와 기능의 이동에 초점을 둔다면 융합화 전략은 공간의 이동에 초점을 맞춘다. 머지않아 금융서비스는 은행뿐 아니라 동네 슈퍼마켓과 약국 그리고 버스정거장과 지하철의 신문 가판대에서도 이뤄질 것이다. 이들 지점은 전자공간의 지점도, 물리공간의 지점도 아니다.

 이처럼 융합화 전략은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을 연계해 전자공간 영역을 확대하고 물리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융합화 전략은 공간의 모호성을 촉진시키며 공간에 대핸 새로운 위상을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제3공간이다. 그러나 제3공간이 진화의 끝은 아니다. 오히려 제3공간은 공간 진화의 출발점일 뿐이다. 제3공간의 새로운 공간적 위상이 정립됨에 따라 다시금 양극화 전략과 중첩화 전략이 구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 중첩화, 융합화 전략이 동시에 적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회 특성과 기능 차이에 따라 어떤 전략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함께 시행착오에 따른 실패와 성공이 반복될 것이다. 다만 효율성에 초점을 둔 양극화 전략은 민간부문에서 주로 채택되고 형평성과 신뢰성에 초점을 두는 중첩화 전략은 민간부문보다는 공공부문에서 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융합화 전략은 공간의 경계를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국가적인 기본 인프라 부문에 크게 적용할 것이다

 새로운 공간의 등장은 기존의 공간 질서를 변화시키고 인구와 기능 분포를 재편한다. 그리고 재편된 공간 질서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다. 공간 창조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21세기에 어떤 전략으로 새로운 공간을 개척해 나갈 것인가는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다.

 

 <공동집필>

 하원규 ETRI 정보화기술연구소·IT정보센터장 wgha@etri.re.kr

 김동환 중앙대 공공정책학부 교수 sddhkim@cau.ac.kr

 최남희 청주과학대 행정전산학과 교수 drnhchoi@cjnc.ac.kr

 

◆물리공간과 전자공간의 악순환과 선순환

 전자공간에 대한 낙관은 곧바로 물리공간에 대한 비관으로 이어진다. 거꾸로 물리공간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는 전자공간의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비관론이 전개된다. 이처럼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의 경쟁 구도에는 두가지 모순된 전망이 존재한다.

 그래서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이 서로 악순환의 관계라는 관점도 있다. 전자공간이 성장할수록 점점 더 많은 기능들이 전자공간으로 이주하면서 물리공간은 텅 비게 되는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다. 소비자들이 전자공간 상에서 쇼핑하는데 익숙해짐에 따라 물리공간상의 백화점들은 하나 둘 문을 닫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전자공간으로 모든 기능과 인구가 몰려든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의 공동화와 황폐화가 거듭되었듯이 전자공간의 발전은 물리공간의 붕괴를 가져온다.

 이와는 반대로 전자공간과 물리공간 사이에는 선순환의 관계도 존재한다. 전자공간이 성장할수록 경제·문화적 활동 규모는 더욱 커지고 그 결과 물리공간에 대한 수요도 갈수록 증가한다는 관점이다. 따라서 물리공간에는 더 많은 병목지점(bottle neck)들이 발생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물리공간에 대한 대규모의 투자가 이뤄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전자공간과 물리공간은 균형된 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전자공간에 대한 비관론을 제기한다. 물리공간의 고도화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며 그 만큼 전자공간의 성장은 늦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나리오가 미래의 공간을 지배하는가에 따라 제3공간으로의 이주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구도가 지배할 때는 양극화 전략이 강조될 것이며 선순환 구도가 지배할 때는 중첩화 전략이 선호될 것이다. 그러나 양극화 전략이 강조될수록 악순환 구도가 미래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미래의 시나리오를 전망해 현재의 전략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현재의 전략이 미래의 시나리오를 결정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