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보통신 연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7)국산 패키지 소프트웨어

 우리나라처럼 토종 소프트웨어가 선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도나 이스라엘이 소프트웨어 강국이라 평가받지만 이는 대부분 선진국의 용역을 받아 개발하는 주문형 소프트웨어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저스트시스템을 비롯한 토종 소프트웨어 업체가 한때 분투했지만 외국 소프트웨어 업체에 시장을 점령당해 이제는 겨우 명맥만 이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위시한 소프트웨어 거대 기업이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최소한 패키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선전을 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워드프로세서나 홈페이지 제작 소프트웨어·백신·리눅스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을 고루 갖춘 곳은 찾기 힘들다.

 특히 최근에는 토종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해외로 눈을 돌려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올해는 최초로 100억원 이상의 소프트웨어 수출 기업이 나올 전망이다.

 이처럼 토종 소프트웨어 업체가 탄탄한 입지를 다진 이면에는 많은 개발자의 노력이 숨어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 개발자의 공로는 매우 크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미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은 외국 제품 일색이 됐을지도 모른다.

 토종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유명한 인물들이 현재 대부분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의 위치에 서 있다. 아래아한글을 만든 드림위즈 이찬진 사장이나 V3를 개발한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사장, 나모웹에디터 개발 주역인 나모인터랙티브 박흥호 사장, 바이로봇으로 유명한 하우리 권석철 사장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제는 그 자리를 2세대 개발자들이 채우고 있다. 그 중에는 제품이 탄생하던 초기부터 관여한 사람도 있고 다른 제품을 개발하다가 나중에 합류한 경우도 있다. 시기야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토종 유명 소프트웨어의 저력은 현재의 개발자들이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토종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으로 평가받는 한글과컴퓨터의 아래아한글은 최승돈 전무와 양왕성 이사의 투톱이 만들고 있다. 최승돈 전무는 2000년 11월 한글과컴퓨터에 영입됐으며 양왕성 이사는 한글과컴퓨터에 12년째 근무하고 있다. 이른바 신구 개발 주역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1960년생으로 85년 미국 텍사스주립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최승돈 전무는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계속해온 해외파다. IBM을 비롯해 미국 굴지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거쳤다. 한글과컴퓨터 입사 후 아래아한글 워디안과 아래아한글 2002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

 최승돈 전무의 업적은 아래아한글을 모듈화한 것으로, 향후 제품 개발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거 아래아한글은 도스 기반에서 윈도 기반으로 넘어가면서 제품이 지나치게 비대하고 복잡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최승돈 전무는 이를 개선한 것이다.

 소프트웨어개발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양왕성 이사는 아래아한글의 산증인이다. 91년 성균관대 수학과 졸업과 동시에 한글과컴퓨터에 입사해 지금까지 아래아한글 개발에만 주력했다. 아래아한글 1.52에서 아래아한글 2002까지 모든 아래아한글 제품의 개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냈다.

 94년 팀장으로 제품 개발을 관장했던 아래아한글 2.5는 서울정도 600년 기념 타임캡슐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95년에는 최초의 윈도용 아래아한글인 아래아한글 3.0b를 개발해 정보통신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국내 홈페이지 제작 소프트웨어 시장을 선도하는 나모인터랙티브의 나모웹에디터도 아래아한글과 마찬가지로 쌍두마차 형식의 개발 시스템으로 만들어진다. 김형집 이사와 우원식 팀장이 팀워크를 이뤄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김형집 이사는 미국에서 나모웹에디터 6을 개발하고 있고 우원식 팀장은 나모웹에디터 5 업그레이드 버전의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두 사람은 서울대를 졸업했고 한글과컴퓨터 개발 팀장을 거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형집 이사는 까다롭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자신이 확신을 갖지 못하면 일을 하지 않는다. 반면 일단 개발에 착수하면 항상 뛰어난 제품을 내놓는다. 대학 시절 활동한 서울대컴퓨터연구회에서 개발에 관해 논쟁이 붙었을 때 ‘김형집에게 물어보자’가 정답이라는 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아직도 대학가에 김형집 추종세력(?)이 남아있을 정도다.

 우원식 팀장은 나모웹에디터의 개발 실무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밤에 작업하는 올빼미 스타일인데 비해 우원식 팀장은 보통 직원처럼 오전 일찍 출근한다. 나모웹에디터 5의 사내 베타 테스트 당시 사내 버그 리포트를 받는 대로 곧바로 프로그램을 수정해 수정 답장을 보낸 일화로 유명하다.

 토종 소프트웨어 가운데 외국 제품에 비해 가장 우위를 보이는 것은 백신이다. 안철수연구소와 하우리에 이어 에브리존이 가세해 토종 백신의 입지를 더욱 탄탄히 만들고 있다.

 국내 1위에서 해외 진출까지 성공하고 있는 안철수연구소는 3명의 핵심 개발자가 있다. 백신을 개발하는 앤티바이러스연구실의 조시행 이사, 네트워크 보안 기술을 개발하는 보안연구1실의 이희조 실장, 무선인터넷 보안을 담당하는 보안연구2실의 원유재 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 가운데 V3는 조시행 이사가 지휘하는 앤티바이러스연구실 소관이다. 조시행 이사는 84년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아건설과 쌍용정보통신, 한글과컴퓨터를 다녔다. 96년 1월 안철수연구소 입사 후 백신 개발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희조 실장은 포항공대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퍼듀대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중 안철수 사장의 삼고초려로 안철수연구소에 합류했다.

 원유재 이사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14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무선인터넷과 홈네트워킹 분야의 보안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데이터 보호 솔루션인 앤디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하우리의 백신인 바이로봇은 백동현 기술연구소 소장이 이끌어나간다. 전체 직원 80명 가운데 60%가 넘는 50명의 개발 인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96년 숭실대 인공지능학과를 졸업하고 LGEDS(현 LGCNS)에 근무하다가 권석철 사장과 함께 하우리를 공동 창업했다.

 하우리 창업 후 백신의 핵심인 엔진을 직접 개발했다. 또 현재의 하우리를 있게 한 일등공신인 CIH바이러스를 완벽하게 퇴치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제3의 토종 백신 업체로 주목을 받고 있는 에브리존에는 과거 PC통신 시절 터보백신을 개발했던 임형택 기술개발연구소장이 있다. 임형택 소장은 가톨릭대 학생이던 94년 4월 터보백신을 처음 개발한데 이어 같은해 11월에는 국내 최초의 윈도용 백신을 개발한 바 있다.

 군 복무 때문에 개발 현장에서 잠시 떠나 있었지만 2000년 7월 다시 에스앤에스라는 백신 개발 업체를 만들고 에브리존과 합병을 거쳐 현 위치에 있다. 현재 온라인 백신인 터보A.I의 개발을 끝낸 상태다.

 리눅스 분야도 토종 업체들이 활약하고 있다. 레드햇, 칼데라, 터보, 수세 등 유수의 외국 리눅스 업체들이 국내에 진출해 있지만 토종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리눅스코리아의 이만용 이사는 국내 리눅스 개발자 사이에 가장 인지도가 높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서울대 지질학과를 6년이나 다녔지만 컴퓨터라는 외도(?) 때문에 아직 졸업장은 받지 못했다.

 이만용 이사는 리눅스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96년 9월 알짜 리눅스라는 국내 최초의 리눅스 운용체계를 만들었다. 소프트웨어 개발뿐 아니라 98년 10월 한국리눅스비즈니스라는 회사를 몇몇 사람들과 창업하기도 했다. 그 후 리눅스원 최고기술책임자(CTO)를 거쳐 지금은 리눅스코리아 CTO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 만든 리눅스 기반의 대규모 인증 시스템이 두루넷에 공급되는 등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데스크톱 리눅스에서는 한컴리눅스의 행보가 빠르다. 한컴리눅스는 리눅스 운용체계와 함께 리눅스 기반의 오피스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했다. 그 주역은 이건용 소장이다. 이건용 소장은 건국대 전자공학과 석사 출신으로 한메소프트의 공동 창업자다.

 한메소프트 퇴사 후 토종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사관학교격인 한글과컴퓨터에서 일했다. 다시 99년 7월 비앤디소프트를 창업해 그래픽소프트웨어인 브라이트를 만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워포인트에 해당하는 한컴프리젠터와 어도비 포토샵과 같은 역할인 한컴페인터를 직접 개발했다.

 임베디드 리눅스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미지리서치는 황치덕 소장이 개발을 이끈다. 서울대 물리학과 입학 후 박사 과정까지 수료한 황치덕 소장은 현대전자를 거쳐 2000년에 미지리서치에 입사했다.

 93년부터 개인적으로 유닉스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왔으며 미지리서치에 온 후로는 리눅스에 사용되는 그래픽사용자인터페이스인 KDE 2.0의 한글화 작업을 했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와 유사한 스타오피스 한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