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수의 IT인사이드>(58)일본 통신 시장의 脫 `갈라파고스 현상`

31일 데브멘토 주최로 열린 모바일 비즈니스 세미나
31일 데브멘토 주최로 열린 모바일 비즈니스 세미나

일본 통신 시장의 특수성을 설명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것이 소위 ‘갈라파고스’ 현상이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통신분야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방송,컴퓨터 등 여러 IT분야에서 일본은 독자 표준을 고집한다.

이 같은 일본의 특수성은 외국 업체들의 일본 진입을 가로막거나, 역으로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에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갈라파고스 군도`가 남미 대륙과는 전혀 다른, 고유의 자연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의 독자적인 IT표준은 일본의 IT산업 생태계를 ‘섬’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같은 관점에서 일본의 통신 시장은 ‘갈라파고스’화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일본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무선인터넷이 보급된 나라다. 지난 99년 2월 일본 제1의 이동통신사업자인 NTT도코모가 ‘i-모드’라는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 무선인터넷 시장에 불을 댕겼다. 당시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에 열중했다. 일본의 `i-모드`는 서비스 개시 30개월만에 28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할 만큼 폭발적인 힘을 분출했다. 이제 막 무선인터넷 시장이 개화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천양지차다.

’i-모드‘라는 비옥한 무선인터넷 서비스 토양 위에 일본은 일찍부터 독자적인 무선인터넷 생태계를 조성해왔다. 덕분에 2009년 3월 현재 일본의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는 모바일 가입자 107백48만명 가운데 84.7%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일본의 ’i-모드‘는 해외 통신사업자와의 제휴를 통한 글로벌 전략에도 불구하고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는 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지금은 일본의 `갈라파고스 현상`을 상징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런 일본 통신시장에 최근 脫 `갈라파고스` 바람이 불고 있다. 脫 `갈라파고스`의 선봉에 애플의 아이폰과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이 있다. 애플의 아이폰과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은 일본 통신 시장의 脫 `갈라파고스’를 촉진하는 핵심 코드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의 보급이 확산되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앱스토어에서 세계 각국의 개발자들이 만들어놓은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받고, 일본의 앱개발자도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에 적합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데 애를 쓸 것이다. 일본에서 개발된 아이폰용 증강현실 프로그램인 ’세까이 카메라‘와 같은 앱이 쏟아지면서 일본의 탈 `갈라파고스`화를 부채질할 것이다.

31일 개발자 포털인 데브멘토 주최로 열린 ‘모바일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세가지 시선’ 세미나에서 김규호 前NHN재팬 기술총괄 이사는 "일본에 아이폰,안드로이드폰 등 해외 규격의 스마트폰 보급이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만큼 국내 앱 개발자나 일본 진출을 노리는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의 아이폰 보급은 우리나라처럼 폭발적이지는 않았다.

지난 2008년 7월 일본의 3위 이동통신사업자인 소프트뱅크모바일이 아이폰을 처음으로 출시했는데 출시후 두달 동안 20만대가 판매됐고,1백만대를 돌파하는데 1년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부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아이폰 쇼크’는 없었다.

일본의 휴대폰 사용자들은 아이폰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i-모드` 등 무선인터넷 서비스에 길들여져 있었기때문에 아이폰이 우리 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모바일이 작년 8월 아이폰 3GS를 내놓으면서 새로운 모멘텀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폰에 이어 일본에선 안드로이드 열풍도 불고 있다. 脫 `갈라파고스`의 두번째 동력이다.

작년 여름 NTT도코모가 대만의 휴대폰 업체인 HTC로 부터 공급받아 처음으로 안드로이드폰을 내놓았고, 소니에릭슨의 안드로이드폰을 추가로 내놓을 예정이다.

일본의 아이폰 공급 사업자인 소프트뱅크모바일도 안드로이드폰 시장에 가세했다. 소프트뱅크는 안드로이드OS 기반의 스마트폰인 HTC ‘디자이어`를 4월말쯤 출시할 계획이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이라는 두개의 전략 상품을 앞세워 스마트폰 시장 공략의 고삐를 더욱 죄겠다는 복안이다.

제2 이통사업자인 KDDI도 안드로이드 대열에 가세했다. 이로써 일본의 3대 이통사업자가 모두 안드로이드폰 시장에 진출하게 됐다. KDDI가 공급키로 한 안드로이드폰은 일본 샤프 제품으로 5인치 터치 스크린을 장착했다. 일본 휴대폰 업체 가운데선 처음으로 안드로이드폰을 내놓는 것이다.

통신사업자들의 안드로이드폰 시장 진출로 일본의 탈 `갈라파고스` 현상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규호 전 NHN재팬 기술총괄 이사는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무선 데이터요금이 저렴하고, 최근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QR코드가 일반화될 정도로 무선인터넷 서비스의 토양이 비옥하다”면서 일본의 脫 `갈라파고스` 현상에 주목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지현 다음커뮤니케이션 본부장은 31일 세미나에서 "일본은 무선인터넷 인구가 워낙 많아 아이폰용 증강현실(AR) 프로그램인 `세까이 카메라`나 위치정보서비스인 `포스퀘어` 등 애플리케이션 이용자나 포스팅이 굉장히 많은게 우리나라와 다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장길수 기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