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강국 미래는 사이버 전력이 좌우한다

 ‘군사 메일 시스템이 다운되고, 위성은 통제 불능 상태. 전기와 수도는 끊기고 금융망에 이상이 발생하면서 국책은행 국가 잔고는 0원으로 떨어진다. 군사시설은 물론이고 경제 인프라까지 국가의 모든 기능이 마비돼 핵공격 이상의 피해가 예상되는 지경이지만, 범인은 추정만 가능할 뿐 오리무중이다.’

 전 세계 주요 기간망과 국가 산업·경제·문화 인프라가 IT 네트워크로 연결된 21세기. 앞서 열거한 상황은 예상 시나리오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일어날 수 있는 사이버 전쟁의 한 전형이다.

 세계 군사 강국들이 육·해·공 그리고 우주에 이어 ‘제5의 전장’으로 꼽히는 사이버 공간에서 전쟁 준비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국방부가 해외에서의 사이버 공격을 전쟁 행위로 결론 짓고, 물리적인 군사력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사이버 공격이 다른 군사 공격과 마찬가지로 인명 사상, 주요시설 파괴 등으로 국가 안보를 위협할 경우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미 국방부는 이달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구체적인 사이버 공격에 대한 대응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는 최근 최고의 군수업체인 록히드 마틴 해킹 사태를 미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방증한다.

 미국은 지난 2010년 발표한 국방검토보고서에서 사이버 전쟁의 중요성을 주목한 바 있으며, 2012년 국방예산 편성에서 사이버 전력 강화에 23억달러(약2조3000억원)를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

 영국 역시 사이버 대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영 국방부는 사이버 공격을 위한 공격 옵션도 개발할 뿐만 아니라 수백명의 사이버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사력 4위인 영국이 사이버 공격을 받을 경우 방어만 할 뿐만 아니라 역공격 태세도 갖추고 있음을 처음으로 공표한 것이다.

 닉 하비 영국 국방부차관은 “사이버 전쟁은 미래 전쟁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며 “(사이버 무기는) 국가 무기의 총체적인 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역시 올해 초 사이버 국방 센터를 신설해 늘어나는 사이버 공격에 국가적 차원의 대응을 꾀하고 있다. 또 중국이 지난달 사이버 부대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각국의 사이버 대전 대응 태세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우리 군은 지난 2010년 국방 정보본부 산하에 ‘사이버사령부’를 창설, 해킹 관제 및 복구 등 사이버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 국방부는 금융과 통신 등 북한의 다양한 사이버 테러에 대비해 사이버사령부를 직할 부대로 확대 개편하며 기존 500명 규모에서 2배 이상 인원을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날로 늘어나는 사이버 테러공격과 사이버 전쟁에 대비할 수 없다. 우리나라 사이버 대응 능력은 북한, 중국, 미국, 영국, 독일 등 사이버전 대비에 비해 한 단계 낮은 수준이다. 국가 차원에서 사이버 전투력 향상과 이를 통제 제어할 수 있는 지휘·방어·무기체계 정립이 절실하다.

 박춘식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국내에서는 사이버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며 “농협 사태에서 입증됐듯이 최소의 공격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이버정보전을 지금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며 “최신 전투기, 잠수함 등을 구입하는 데는 큰 비용을 투자하지만 사이버사령부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다. 더욱 근본적인 투자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